[Why] 36년 출판인 "책 팔아 번 돈으로… 인생 2막은 나무와 친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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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15-06-06 조회수 : 2002 | |
조선일보 | 2015. 6. 6.
[Why] 36년 출판인 "책 팔아 번 돈으로… 인생 2막은 나무와 친구합니다" 포천에서 8년째 수목원 일구는 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 나만의 공간이자 탈출구 나무 돌보면 무념무상… 몸과 마음에 쌓인 노폐물 배출할 공간 필요 소요산 자락 20만 평 가꿔
야트막한 산기슭 계곡가에 줄지어 선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쌀밥처럼 매달고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있다. 대왕참나무와 목백합 사이에 군락을 이룬 영산홍 꽃잎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자작나무, 잣나무, 굴참나무 숲에는 야생화와 산나물이 지천이다. 경기도 포천 신북면 산비탈에 66만㎡(약 20만 평) 규모의 '나남수목원'을 8년째 일구는 조상호(65) 나남출판사 회장은 36년 동안 책 만드는 일을 했다. 하지만 지난달 11일 수목원에서 만난 그는 밀짚모자에 흙 묻은 등산화를 신은 채 가위로 나뭇가지를 자르는,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었다. 밀짚모자를 쓴 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이 8년째 가꾸고 있는 경기 포천 나남수목원을 둘러보고 있다. 평생 출판인으로 살아온 그는 “인생 2막은 나무와 ‘친구’ 하며 지내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조 회장은 “지구에 잠시 소풍 나온 인생이다. 소풍 나온 기념으로 그럴듯한 녹색공간을 남겨주고 싶다. 산에 묻혀 나무처럼 살면서”라고 했다. 수목원에 가득한 연초록 나무 빛깔이 꽃보다 곱다. /고운호 객원기자
"나무, 힘든 세파에서 나를 지키는 '탈출구'" "나무를 돌보며 숲속에서 지내다 보면 세상 고민을 잊고 무념무상이 된다. 나무 심기는 지친 정신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활력원이다." 그는 출판사 일 틈틈이 시간을 쪼개 나무를 키운다. 그는 "누구에게나 방귀 뀔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몸과 마음에 쌓인 짐과 노폐물을 마음껏 배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만 치달리다 보면 쓰러진다. 나에게 나무 심는 일은 갖은 세파와 유혹에 견디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나만의 공간이자 '탈출구'다"라고 했다. 조 회장은 1979년 출판사를 시작한 이후 언론학 등 사회과학 책을 중심으로 2,800여 종의 책을 냈다. 그는 고려대 법대 시절 지하신문 〈한맥〉 기자 출신의 운동권 학생이었다.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 시절 학생운동으로 제적당한 경력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신 권위주의 시절 언론이 못하던 사회 비판 기능을 단행본 출판이 대신하는 출판 저널리즘으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언론학 책을 집중 출판했다. 원했던 기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낸 책으로 공부한 사람이 기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언론 의병장'이라 부른다. "제도 언론은 아니지만 재야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출판사 사장은 책 목록으로 말한다 1980~1990년대에는 당시로선 생소한 커뮤니케이션 관련서만 수백 권을 낸 덕에 언론학계에선 "나남에서 책이 나와야 신문방송학과의 커리큘럼을 짤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판사가 판결문으로 발언하듯 출판사 사장은 책 목록으로 발언한다"고 했다. 조 회장은 "고등학교 시절 강연에서 한복 차림의 조지훈(趙芝薰) 선생을 처음 본 이후 평생 그의 고고한 선비정신을 마음속으로 본받으려고 했다"며 "큰아들 이름을 '지훈'으로 짓고, 2001년부터 지훈문학상과 지훈국학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평생을 출판인으로 살아왔지만 인생 2막은 나무와 '친구' 하며 지내기로 했다. 그의 인생은 '친구' 덕에 더 바빠졌다. "내가 수목원을 한다고 하면 다들 이슬 먹고 사는 줄 아는데, 사실은 나무 돌보랴 출판 일 하랴 더 바쁘다. 나무 살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책을 많이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우연히 나무 심기와 인연을 맺었다. 1995년 책 창고를 신축할 때 은행 대출을 받으면서 부실채권인 파주 적성면의 임야 약 5만㎡(1만 5,000평)를 떠맡게 되었다. 땅을 그냥 둘 수 없어 느티나무, 꽃사과,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차례로 심었는데 모두 죽었다. 물이 많은 땅이라는 걸 몰라 어린 생명을 죽인 것이다. 죽은 나무에 미안했다. 이후 산림조합의 지도로 공부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나무 가꾸기를 시작했다. 조 회장은 2000년 국립수목원 자락에 집을 짓고 8,600㎡(2,600평)의 정원을 가꾸며 자연의 삶에 재미를 붙였다. 서울 서초동에 살면서 주말이면 달려가 '농부'가 되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곯아떨어졌다. 땅에 코를 박고 땀을 흘리며 나무와 꽃 가꾸는 일에 몰두하면서 좌절하고 절망했던 나를 치유하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2011년 나남수목원에 산사태가 난 이후 만든 미니 댐이 산중 호수로 변했다. 호숫가의 나무에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나남수목원 제공
"귀한 나무일수록 험한 변두리에 심어" 나무 키우기에 재미를 들일 무렵인 2006년, 파주 적성에 가꾸던 농원 한가운데가 도로 개설로 수용당하면서 10여 년 정성 들여 키운 나무들을 파헤쳐 옮겨 심어야 했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땅을 찾아 전국을 헤맨 끝에 2008년 이곳을 발견해 나무들을 옮겨왔다. 포천 소요산 자락의 산기슭 가운데로 실개천이 흐르는 곳이다. 수목원을 둘러보던 조 회장은 "이 녀석들 키우는 재미에 산다"고 했다. 병충해로 잎과 줄기가 불그스레하게 변한 나무를 보면 "몸살을 앓고 있다"고 가지를 어루만지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귀한 나무일수록 험한 변두리에 심는다. 그 나무를 돌보기 위해 한 번이라도 더 가보게 되고 풀도 자주 뽑아주면, 운동도 되고 그곳이 좋은 장소로 변한다. 사람도 그렇다. 좋은 인재일수록 개척지에 배치해 어려운 일을 시키면 나중에 많은 성과를 거두는 법이다." 수목원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처음에 촘촘히 심은 어린나무를 일정 기간 키운 다음 뽑아서 띄엄띄엄 옮겨 심는 일이다. "나무를 옮겨 심다 보면 잔뿌리 중간중간에 지렁이가 우글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무는 햇빛과 물만 있으면 크는 줄 알았는데, 지렁이가 나무 밑에 살면서 나무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지렁이는 땅속에 구멍을 파고 다니면서 공기나 수분이 잘 통하도록 흙을 갈아준다. 지렁이의 배설물은 흙을 기름지게 만들어 나무가 자라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무가 자라는 데도 남모르는 손이 작용하는 셈이다. 세상일도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걸 뒤늦게 깨닫고 겸손을 배운다." 그는 "나무와 20여 년을 뒹굴다 보니 나무 보는 눈도 달라졌다"고 했다. "한겨울에도 푸른 송백(松柏ㆍ소나무와 잣나무)의 기상에 흠뻑 빠져 처음에는 눈에도 차지 않았던 활엽수가 이제는 더 좋아졌다. 한바탕 단풍 잔치를 마치고 한 해의 잎사귀를 훌훌 털어버리는 매몰찬 용기가 부럽고, 한겨울 찬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는 나목(裸木)의 인내는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하다." 그는 "나무를 기르면서 세상 사는 이치를 깨닫기도 한다"고 했다. "가죽나무나 참죽나무는 작은 나무일 때는 뒤틀려서 서까래로도 쓰지 못하고, 커서는 울퉁불퉁해서 대들보감이 안 되어 사람의 도끼날을 피한다. 그렇다고 서까래나 대들보를 부러워하지 않고, 쓸모없는 나무라고 자책하지도 않으면서 오랫동안 거목(巨木)으로 살아남는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처럼 자연 속에서 또 다른 의미의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그는 "출판을 시작했을 때 '돈이 되지 않는 학술서 출판에 무모하게 뛰어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다"며 "출판에서도 가죽나무나 참죽나무같이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며 큰 나무로 성장하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산사태로 수목원 산자락 휩쓸려 나가 나남수목원은 서울 우면산 산사태가 났던 2011년 수목원 산자락이 통째로 휩쓸려 나가는 산사태를 겪으면서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수목원 8부 능선에 자리 잡은 송전선 철탑의 축대가 무너지면서 골짜기 1㎞가 초토화됐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100년 넘는 산뽕나무가 토사에 묻혀 죽고, 거목이 된 잣나무 수십 그루가 뿌리째 뽑혔다. 애지중지 길렀던 헛개나무ㆍ음나무ㆍ밤나무 묘목 3,000그루도 떠내려갔다."
조 회장은 산사태를 수습하면서 실개천 상류에 미니 댐을 만들었다. 조그마한 산봉우리 하나를 통째로 털어내 4~5m 넘게 물길에 패인 계곡도 메웠다. 이렇게 만든 미니 댐이 작은 산중 호수로 변했고, 호수 옆에는 책 박물관과 작가 집필실을 짓고 있다. 그는 "우리 지성사에 남을 명사들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오고, 작가들이 머물며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2,000~3,000명의 회원을 모아 수목원을 공유하고 시낭송회나 산중 음악회도 열어 힐링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산봉우리를 헐어낸 자리에 3만 3,000㎡(1만 평)의 아담한 공간이 새로 마련되었다. 남향으로 양지바른 이곳에 13년생 반송(盤松) 3000그루를 심었다. 천천히 자라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옹골찬 모습이 좋았다. 이곳을 둘러본 지인이 수목장으로 사용해도 좋을 것이라고 권했다. 우리 사회 공동체에 공헌한 지식인이나 문화예술인들의 묘원(墓園)으로 만들고 싶다. 개인의 영달에 매달리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일에 헌신하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 명사들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안식처를 꿈꾸고 있다." 그는 "나남출판사에서 책을 낸 저자만 3,000여 명이 된다. 그분들이 인재의 저수지라면, 나는 댐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제는 나남수목원이 그분들을 포함, 우리 사회에 공헌한 명사들의 넉넉한 저수지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평생 출판에 종사하다 이제는 나무 키우기에 푹 빠진 그를 보고 한 후배 시인은 이런 시를 썼다.
그는 돌멩이로 모음을 쓰고 나뭇가지로 자음을 썼다 흐르는 계곡의 물과 능선을 넘어온 바람으로 줄거리를 만들었다
책은 나무가 산고 끝에 잉태한 아들 평생 책의 아들이었던 그는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듯 나무 속으로 들어갔다 (임병걸 '세상 가장 큰 책' 중)
"세상에 나이 들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기품을 더하는 것은 나무밖에 없다. 나도 나무가 되어 나무처럼 살고 싶다."
글 | 최홍렬 기자 사진 | 고운호 객원기자, 나남수목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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