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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薰사랑' 뚜벅걸음 30년 내 삶은 외길이라오
매체명 : 중앙일보   게재일 : 2001-02-05   조회수 : 9347

중앙일보 | 2001. 2. 5.

 

'芝薰사랑' 뚜벅걸음 30년 내 삶은 외길이라오

 

 

‘芝薰賞’은 나남출판사 조상호 대표의 지훈 섬김의 결정체다. 지훈을 우리가 되찾아야 할 선비정신의 표상이라고 믿는 그는 《조지훈 전집》을 간행할 때부터 ‘지훈상’을 만들기 위해 현재 서울 미아동에 살고 있는 조지훈의 아내를 계속 모셨다.

문학(시집ㆍ평론)ㆍ국학 두 부문에서 오는 5월 첫 수상자를 배출하는 ‘지훈상’의 운영위원회는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조동걸 전 국민대 교수, 성찬경 시인, 신용하 서울대ㆍ홍기삼 동국대ㆍ김인환 고려대ㆍ이성원 서울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상금은 각 5백만 원.

예전 1960, 1970년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존경하는 인물’을 조사하면 남학생은 이순신ㆍ슈바이처, 여학생은 유관순ㆍ나이팅게일을 단골로 써놓곤 했다. 요즘은 이들을 포함해 빌 게이츠ㆍ박찬호ㆍ서태지ㆍ박세리 등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순신ㆍ유관순 같은 사람의 역사적 가치는 대의명분 앞에 초지일관 자신을 희생해 후세를 기약한 것이었다. 반면 빌 게이츠나 박찬호류의 가치는 동시대인들에게 편의와 용기와 오락을 선사하고 그것들을 통해 당대에 개인의 부를 쌓고 명예를 얻는 데 있을 듯하다.

기존의 고정된 질서를 해체하고 개인이 바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한 개인이 스스로의 가치중심을 이순신에 두든 박찬호에 두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한 각자의 선택은 등가(等價)가 된다.

최근에 나온 《마키아벨리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책을 보면 마키아벨리를 기준으로 인간을 ‘마키아벨리를 닮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거기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조차 선(善)이라고 보았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속에서 ‘마키아벨리를 닮는 것’이야말로 세속적 성공을 담보하는 필요조건이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실제 동서고금의 현실은 ‘마키아벨리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마키아벨리적 인간들을 위해 강제된 도덕적 부역에 시달리다가 “왜 착한 사람들은 실패하는가”라는 울분을 토하다 사라져갔음을 무수히 보여줬고, 보이고 있다. 시인 조지훈(1920~1968)은 그런 착한 사람들을 위해 살다간 대표적 선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록파’ 조지훈을 생각할 때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그의 시 〈승무〉(僧舞)를 먼저 떠올린다. 나도 물론 그렇지만 거기에 덧붙여 나는 그의 수필 ‘주도유단’(酒道有段)도 늘 함께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술을 마시는 데도 술을 대하는 수행의 정도에 따라 바둑처럼 급수와 단수를 매길 수 있다는 유머러스한 글이다.

이 글을 보면 바둑으로 치면 한 4, 5급 되는 단계가 상주(商酒)로, 술맛을 알고 즐길 줄도 아나 무슨 잇속이 있을 때나 마시는 사람을 가리킨다. 마키아벨리적 인간이다. 주야장창 술에 젖어 사는 3단 이상은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로되 1급으로 쳐주는 학주(學酒ㆍ주졸), 곧 술의 진경에 대해 늘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는 단계나 기주(嗜酒ㆍ주객), 곧 자신은 몸의 상태나 해야 할 일 때문에 비록 술을 먹기에 곤란한 형편이나 남이 한잔하자 할 때 이를 뿌리치지 않는 단계쯤은 괜찮은 관습으로 지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장하자면 술에서 이순신적 태도라고 할 만한 단계다.

우리가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라고 말할 때 그것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려면 일상 속에서 그 존경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기리고 따라야 한다. 존경은 관념이 아니고 실천인 것이다. 기성세대든 지금의 어린이든 자신이 존경한다는 인물의 됨됨이나 그가 한 노력의 근처에라도 가보려고 애쓴다면 세상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출판인 조상호(51ㆍ나남출판사 대표) 씨는 시인이자 국학자인 조지훈을 존경한다. 그는 외아들의 이름을 지훈이라고 지었고, 20여 년 전 절판된 《조지훈 전집》을 1996년에 간행했다. 출판사 사옥도 ‘지훈빌딩’이라 이름 지었다. 또 숙원이었던 ‘지훈상’을 사재를 털어 제정했다.

지방 고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후반에 문학 강연차 내려온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지훈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지사(志士)에 대한 충격”을 받은 후 “지훈이 봉직하는 대학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대에 들어갔다” 했으니 그로서는 30여 년간 지훈에 대한 존경을 나름대로 일상에서 실천해 온 셈이다.

출판계에서 조 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우리 사회 어느 분야나 워낙 말 많고 탈 많으니 그에 대한 평가도 그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오해나 편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라는 속담의 일리를 감안한다면 그 ‘오해’와 강직한 스승의 한 표상인 지훈의 이미지와의 간극은 그 스스로 메워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지훈처럼 지금까지 살아왔는가’라는 물음에 “앞으로 지훈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남의 말에 희비하기보다는 자신이 삶의 지향점을 지훈 정도의 격으로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자신을 끌고 나가면 그 가능성이 반드시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한 인물에 대한 흠모의 정을 자신의 삶 곳곳에 끼워 넣고 이를 기리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조 씨의 지훈 존경은 앞서 소개한 아들 이름 말고도 많은 ‘증거’를 갖고 있었다. 1976년 복학(그는 1971년 위수령 사태로 제적된 후 강제 입대됐다) 후, 일지사에서 나온 《조지훈 전집》(전 6권)을 1만 4천 원에 산 뒤(당시 등록금은 6만 원 정도였다) 책 앞장에 ‘라이온스 장학금의 힘을 입어 지훈의 품에 안기다’라고 감흥을 적어 놓았다.

‘책만 사놓고 읽지는 않으면서 지훈 지훈 한 것 아니냐. 어디 밑줄 쳐가며 정독했는지 좀 보자’라는 추궁(?)에 일지사판 지훈전집을 꺼내 보여줬다. 전집 중 논설 편을 보니 과연 여기저기, 예컨대 “이 길이든 저 길이든 우리가 찾는 길은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 가장 적합한 길이어야 한다”, “그러나 예나 이제나 몰락의 길은 평이하고 향상의 길은 간고하다”, “어느 길을 찾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그 고민이 무엇 때문인가부터 자각해야 한다” 등의 글 옆에(그때는 세로쓰기가 일반적이었다)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는 또 출판인으로서 늘 새겨두고 있다는 지훈의 시 ‘인쇄공장’을 큰 소리로 낭독했다.


모래밭을 스며드는 잔물결같이
잉크 롤라는 푸른 바다의 꿈을 물고 사르르 밀려갔다
물색인양 뛰어박힌 은빛 활자에 바야흐로 해양의 전설이 옮아간다.
흰 종이에도 푸른 하늘이 밴다. 바다가 젖어든다.
파열할 듯 나의 심장에 진홍빛 잉크,
문득 고개 들면 유리창 너머 난만히 뿌려진 청춘, 복사꽃 한 그루.


마치 자신을 위해 지훈이 이 시를 지은 것 같다는 그는 정신적 스승의 존재가치란 늘 그를 존경하는 사람의 현재를 그 스승이 감시하고 격려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처한 이 입장을 스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행동이 스승의 기준에 비춰 부끄러운 짓이 아닌가”하는, 자신을 엄격하게 지탱시키고 때로는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 스승에 대한 모심은 집단적 종교와는 또 다른 개인의 종교가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조 씨는 1979년 출판사를 차린 이래 지금까지 사회과학서와 문학서를 중심으로 2천 종 가까운 책을 냈다. 특히 언론 관련 출판을 전문적으로 개척했고 지금은 독보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혹자의 평처럼 그가 지훈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다면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은 자연스럽다. 지나온 사연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남이 뭐라고 하든 옳다고 뜻한 바를 소신 있게 밀고 왔다”는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 책들 때문이다.

그의 사옥 지훈빌딩 앞에는 나이 든 소나무가 두세 그루 서 있다. 지을 때 그 공간을 활용하면 음식점 같은 데 세를 줄 수 있었지만 풍류 비슷한 마음에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사무실 안에도 작은 대나무밭을 가꾸고 있다. 그가 언제나 지훈의 뜻을 되새기며 걸어가기를 기대한다.

 

글 | 이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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