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이사장 에세이언론이 본 나남 조상호

사회과학책 출판 한우물로 20년
매체명 : 한국일보   게재일 : 1999-05-25   조회수 : 10752

한국일보 | 1999. 5. 25.

 

사회과학책 출판 한우물로 20년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 

 

언론학을 중심으로 정치사회학, 광고학 등 사회과학책을 쏟아내듯 발행해 온 ‘나남출판’.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이 출판사가 ‘나남신서’라는 이름의 사회과학책 시리즈 목록에 최근 700번째 책을 추가했다. 이 출판사를 경영하는 조상호(趙相浩) 사장의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이다.

사람들은 나남출판이 내놓는 책의 엄청난 물량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난해 부도나 지금은 거의 출판을 중단하다시피 한 고려원과 함께 ‘책 많이 만드는’ 출판사의 하나로 손꼽히는 나남출판. 그것도 종합출판이라기보다 사회과학, 특히 재미없고 딱딱한 대학 학술서들만 집중적으로 만들어내는 곳이다. 출판계를 훤히 알지 못하더라도 나남출판의 책 목록을 보면 이 출판사는 책 만드는 데 어떤 원칙을 갖고 있다는 짐작이 간다.

《한국언론과…》는 권위주의 정치체제 아래서 무기력했던 언론의 기능을 대신한 출판의 고통스러운 싸움에 대한 기록이다. 너무도 본디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신문과 방송의 빈자리를 안간힘을 쓰고 채우려 했던 ‘출판 저항’의 짧은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조 사장의 출판에 대한 신념과 고집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출판을 통해 어떤 권력에도 꺾이지 않고 정의(正義)의 강처럼 한국사회의 밑바닥을 흐르는 힘의 주체를 그려보고자 했다”는 그의 말은 바로 이 책을 발행한 이유이자 나남의 출판원칙이다.

이 책은 세상을 보는 창(窓)으로서의 출판의 기능과 한국 출판저널리즘의 역사, 그리고 3공화국 이후 현재까지 사회비판적 출판운동의 흐름을 조망하고 있다. 특히, 1970~1990년대의 정치사회 변동과 언론ㆍ출판운동의 변화를 짚어보는 데 큰 비중을 뒀다. 동아ㆍ조선투위 활동으로 해직한 언론인들이 전예원, 두레, 정우사, 아침 등 출판사를 만들어 진보적인 사회과학 책을 발행하며 사회비판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실들이 다양한 기록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됐다. 또 한국현대출판사에서 큰 역할을 맡았던 창작과비평사, 민음사, 그들에게 자양분을 주었던 비판적 지식인들의 활동과 최근 일고 있는 학술출판과 운동출판의 활동까지 담았다.

조 사장은 “출판을 알고, 제대로 하는, 그리고 스스로 매우 열심히 공부하는 보기 드문 출판인”으로 꼽힌다. 그는 편집부원들과 똑같이 일한다. 오역이 보이는 책은 사장이 직접 원문을 대조하며 다시 번역하고, 매끄럽지 않은 책은 교열까지 본다. 조 사장은 나남출판 20년을 맞아 10년 동안 반년간으로 발행하던 〈사회비평〉을 계간으로 바꾸었다. 25일 오후 6시 30분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는 나남출판사의 고집스러운 정신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

 

글 | 김범수 기자

이전글 "책은 생명이며 세상의 창"
다음글 아웃사이더, 그 화려한 창조적 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