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이사장 에세이언론이 본 나남 조상호

출판광고의 격
매체명 : 출판저널   게재일 : 1989-02-05   조회수 : 9347

출판저널 | 1989. 2. 5.

 

출판광고의 격

 

 

직업에 귀천을 따로 두어 가리는 것은 온당한 일이 못될 터이지만 나는 평소 출판사업을 하는 이들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심을 특별히 만들어 갖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좋은 읽을거리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이웃들에게 읽히고자 하는 일은 특히 오늘날과 같이 저급의 말초적 문화 지배수단이 판을 치는 시대에서는 무엇보다도 값진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것은 오늘의 시대적인 문명정신을 문화의 차원에서 바로 지켜내기 위한 마지노선이라 생각되기도 하고, 또 그런 이들의 역할분담과 기능이 있기에 우리는 이 황폐한 산업사회의 정신적 구조 안에서 최소한의 인간성이나마 서로 어루만지며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믿음을 나는 갖고 있다.

나 자신도 일주일에 두어 번씩은 버릇처럼 서점가를 얼쩡거리면서 새로 나온 여러 가지 책들을 구경하는 사람이고, 그러다 보니 신문을 펴들어도 책 광고가 실린 페이지는 거의 빼놓지 않고 훑어보는 처지인데,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그 광고들을 보는 내 시각 자세에 뭔가 항상 찜찜한 사시(斜視)가 끼어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는 점이다.

그것은 주로 화려하게 마련인 책 광고 내용의 광고언어들로부터 나 자신의 이익을 따져 보호하려 하는 일종의 방어본능 때문이다. 책 광고를 그냥 순수한 의미에서의 신간정보로 수용하지 못하고, 무언가 그것의 내용을 의심하는 버릇이 어느 때부터인지 내게 생겨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출판광고의 격 내 심성의 비뚤림 탓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수많은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이도 그 화려한 광고언어들에 의해 속임을 당해 본 경험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아무려면 출판도 기업인데, 어떻게 해서든지 우선 한 권이라도 더 많이 팔아야 하겠다는 절체절명의 필요성이 왜 없겠는가 이해는 하면서도, 또 속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직접 서점에 가서 그 비좁은 공간에 몸을 부대끼며 실제로 현물의 내용을 장시간 보지 않고는 대뜸 편한 마음으로 가까운 단골서점에 전화주문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출판광고가 영화광고나 유흥장광고 따위들과는 달라야 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출판을 업(業)으로 하는 이들이 저들 하루보기 사업자들과 사업이념의 격(格)이 같지 않다는 점이다. 문화를 상품으로 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먼저 그 문화의 격을 바로 지켜낼 줄 알아야 된다고 하는 평범한 진리가 참으로 아쉽게 여겨지는 것이 요즈음의 출판광고 풍토에 대한 내 개인적 소견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나남출판사가 제 광고에 내걸어 쓰고 있는 아래와 같은 한 줄의 캐치프레이즈는 나 같은 공연한 사람에게까지 각별한 친근감과 호감을 갖게 한다.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

누구에게나 무리없이 겸손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한 마디 안에 그 출판사의 기업적인 이념과 제상품에 대한 긍지가 듬뿍 담겨져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요란한 수식어, 선동적인 과대표현 따위는 가급적 절제된 상태에서 독자가 그 출판사의 이름만 확인하고도 책내용의 품질적 수준을 신뢰하여 안심하고 주문할 수 있는 풍토가 하루빨리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 사회의 다른 사업분야 종사자들보다는 아무래도 좀더 배움의 혜택을 많이 받고, 합리적인 사고의 기회를 좀더 많이 획득한 이들이 출판업자들일 것이다. 그 혜택받은 바에 의한 고귀한 값어치의 재생산성을 제가 속한 사회에 바르게 베풀어 환원한다는 의미에서도 우리 출판광고의 면면들은 조금씩 그 분장을 달리해야 할 때인 것이다. 얼렁뚱땅 일확천금이라는 불합리한 의식의 산물은 이제 마땅히 부동산 투기꾼들의 몫으로나 돌려줌 직한 일이다.

 

이만재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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