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이사장 에세이언론이 본 나남 조상호

조상호 나남출판사 사장 '열린출판 25년'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04-10-15   조회수 : 9838

조선일보 | 2004. 10. 15.

 

조상호 나남출판사 사장 '열린출판 25년'

 

 

"책도 사람도 '나와 남'이 어울려야죠"


1979년 서울 종로의 고대교우회관 6평 사무실에서 시작한 나남출판사 조상호 사장이 서초동 지훈빌딩 시대(1994~2004)를 마감하고 800평 규모의 파주출판도시 지훈빌딩 시대를 연다. 6평이 800평이 되는 4반세기 동안 ‘나남’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은 2,100여 권. 그중 상당수가 좌우 양편으로 지적인 시야를 넓히거나 혹은 좌우대립을 가운데로 수렴하는 책들이라는 점에서 나남이라는 출판사가 좁게는 우리 출판계, 넓게는 우리 지식사회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이 자리한다.

“잡탕 출판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요.” 지난 25년의 출판 목록 등 방대한 자료를 묶어 최근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나남출판 4반세기’를 펴낸 조 사장은 “잡탕이긴 하지만 샐러드가 아니라 용광로이고자 했다는 항변은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정(長征)’의 필자인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보여준 광복군 무장투쟁 노선을 기본으로 해서 시인 조지훈으로 이어지는 열린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출판을 해왔다는 것이다. 상업성이 거의 없는 ‘백범전집’ 출간을 밀어붙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자기 출판의 정신을 함석헌 선생에게서 찾더군요. 그런 점에서 저는 단연코 조지훈 선생입니다.” 실제로 9권짜리 ‘조지훈 전집’도 나남에서 나왔다. 건물의 이름에 ‘지훈’을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1년부터는 지훈상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고려대 법대를 다니면서 지하신문을 만들었다가 제적당한 30세의 청년 조상호는 ‘나와 남이 어울려 사는 우리’를 뜻하는 나남이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낸다. 초대 편집장은 이병완 씨. 지금의 청와대 홍보수석이다. ‘갈매기 조나단’으로 유명했던 리처드 바크의 ‘어디인들 멀랴’를 정현종 시인의 번역으로 출간한 것이 첫 작품이다. (이걸로 돈을 좀 벌어) 1980년 정치학 개론서로 유명했던 연세대 이극찬 교수가 번역한 버트런드 러셀의 ‘희망의 철학’을 ‘나남신서’ 첫 권으로 냈다. 나남신서는 최근 고려대 최상룡 교수의 ‘중용의 정치’를 1046번째로 내며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80년대에는 현재 열린우리당 중진의원인 신계륜 씨가 제2대 편집장으로 들어와 비판적 사회과학서들을 기획했지요.” 그렇게 80년대 왼편의 사회과학 쪽으로 기울었다면 90년대에는 고급 인문학에 치중했다. 푸코나 하버마스의 책들을 대거 번역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러다 보니 나남의 도서목록에는 한양대 이영희, 고려대 최장집, 서울대 한상진 교수 등과 같은 진보 내지 좌파성향의 학자들뿐만 아니라 국내의 우파를 대표하는 서울대 송호근, 고려대 김병국 교수, 심지어 자유기업원의 책들까지 포함돼 있다. 이승만의 박사학위 논문과 영문저서의 번역본인 ‘일본 군국주의 실상’도 나남에서 나왔다. “기왕이면 이승만 박사의 대표작이자 지금은 거의 잊힌 ‘독립정신’까지 다시 펴낼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승만과 김구의 전집을 다 갖추게 되는 것이다.

파주 시대를 앞두고 그는 “시대의 저변에 흐르는 흐름이 무엇인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글 | 이한우 기자

이전글 "모여 사는 건 지혜 규모의 경제 실천"
다음글 사회과학 분야의 거대한 산맥, '나남출판' 조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