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반송 이야기
작성일 : 23.09.19   조회수 : 329

1. 나무 심는 마음

 

23년 전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 광릉수목원 죽엽산 자락에 꽤 넓은 포도밭 다섯 마지기를 밀어내고 집을 지었다꿈꾸던 전원생활의 첫 걸음이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잡스러운 도시생활의 욕망을 비껴난 희망의 안식처를 만들고자 하는 뜻이 더 컸을 것이다출판사가 이십 년을 버텨내며 이름을 얻기 시작하고서울 서초동에 사옥 지훈빌딩을 짓고파주에 큰 농협창고 두세 개 크기의 물류창고까지 마련하고 한숨 돌리던 무렵이었다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집권으로 민주화 세력의 큰 축이었던 학생운동의 친구들도 정치권력 주변으로 눈에 띄게 진출했다손에 잡힐 듯한 크고 작은 유혹들에 솔깃하기도 했다스쳐 가는 잡념을 다스리며 본업인 출판사업에 더욱 매진하기 위해서라도 이 산골을 나의 넬라판타지아로 의미를 부여하여 말 못 하는 나무들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데에만 아까운 시간을 쓰기로 했다.

독학으로 각종 묘목을 키워 보았다먹물 티가 배인 허영으로 교육받을 기회를 찾아 헤매기도 했지만가르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갖는 소규모의 패배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수준들에 실망했다여느 사람들과 같이 작은 성공을 부풀리거나 되지도 않게 나무로 돈 벌 방법만 외쳐댔다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기로 했다가뭄에 빨갛게 타들어가는 묘목이 눈에 아른거려 별난 이권이 있는 회의라도 걷어차고 이곳에 물을 주기 위해 뛰어오기도 했다출판만 할 것이냐고 화려한 무도회의 참여를 권유하던 친구들도 차츰차츰 나무에 미친놈이라며 나의 알리바이를 인정하는 듯했다.

죽은 나무 자리에는 흙을 북돋워 또 나무 심기를 몇 년을 되풀이했다처음에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이 나무들을 통해 생명의 애착에 깊숙이 빠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이 선을 넘을 일이 아니었다이젠 나무 심는 마음이 우화등선羽化登仙하여 남은 생을 숲에 살게 하는 업이 되었기 때문이다이 무렵 한 이삼 년 남동원 선생을 모시고 열심히 주역〉 공부를 하면서도 얼핏 세상이치를 알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스치길래 주역은 주역일 뿐이라고 마음을 추스르며 그만두기도 했는데 어리석음은 끝이 없었다그리고 십 년도 되지 않아 나는 장차 20만 평 나남수목원의 탄생을 옹골차게 기획하고 있었으니 말이다추가로 구입한 밭 세 마지기에는 밤나무 40그루가 해마다 알토란 같은 밤톨을 토해내고임대한 국유지 네 마지기 밭에는 매실나무느티나무밤나무산수유헛개나무자두나무아로니아블루베리들이 어울려 크고 있다이제는 이 집이 본가本家가 되었다.

 

포도밭을 밀어낸 도톰한 자리여서인지 집 주변이 맨살을 드러낸 듯 휑해 보여 꿈꾸었던 숲속의 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1993년 러시아 여행 중 찾아본 모스크바 근교 페레델키노의 자작나무 숲에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숲속의 집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이 영화 속에 비춰진 자작나무 숲과 함께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100년 넘는 시간의 숲속에 나도 이런 집을 지어 살고 싶다는 욕망은 잠재우기 어려웠다어떤 돌이든 억겁 년 묻혀 있다 보면 현자賢者의 돌인 금이 될 수 있을 텐데무한대의 시간을 극복해서 사람의 일생인 지금 여기에 앞당겨 실현해 보려 했던 연금술사의 망령 같은 욕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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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에는 지식이나 경험이 없었으나 내가 보기에 뭔가 불편하다 싶으면 견디기 어려웠다그 불편을 설명할 수도 없고 더욱이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어 더욱 그러했다우선 개울가에 큰 돌로 석축을 높이 쌓아 이웃들이 오사카성이라는 별명도 붙인 축대 가장자리를 삥 둘러 제법 큰 10년생 메타세쿼이아 5그루를 심었다내가 선택한 수종이 아니고 인부들이 임의로 석축을 쌓으면서 심은 것이다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떠올리며속성수速成樹라는 말을 들었으니 이 나무들이 자라 곧 이웃들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우리 집을 숲속의 집으로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옮겨 심은 나무가 제자리를 잡는 데는 사오 년이 쉽게 걸린다거나뿌리가 자리를 잡으면 탄력을 받아 상상 이상으로 크게 자란다는 사실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생각이었음은 다음의 시행착오가 증명한다.

숲속의 집을 꿈꾸는 조급한 마음에서인지 뻥 뚫린 메타세쿼이아 사이의 빈 공간이 눈에 거슬렸다마침 제주도에서 보았던 해송 100그루를 구할 기회가 닿아 석축 가장자리 두 번째 줄에 촘촘히 심었다. 5년생이었지만 제법 녹색 띠를 두른 듯 집이 안온해 보였다봄마다 해송의 새순이 돋는 특이한 아름다움을 감상했다다음 해에는 해송 사이사이에 산수유나무 10그루를 심어 봄에는 가지마다 노란 왕관을 쓴 꽃들이 열병식을 벌렸고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를 맺어 한겨울까지 가는 장관을 연출했다나무들이 커갈수록 집은 숲속의 집이 되어 아늑해졌다이런 작은 평화가 10여 년을 지속하자 이제는 집이 나무에 치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 그 무렵 시작한 포천 나남수목원 넓은 터에 이 해송 90그루를 옮겨 심었다. 10년 동안 훌쩍 커 장송 티가 나는 해송들을 이식하느라 공력이 많이 들었다그들이 내준 집 앞의 새로운 공간으로 숨통이 틔었다넓은 수목원으로 이식한 해송들은 낯을 가리는지 겸손한 모습이 되고 다시 키가 작아 보였으나 또 10년이 지나자 이제는 늠름하게 자리를 잡고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메타세쿼이아는 자리를 잡고 나서는 하늘로 치솟는 속성수가 맞았다한겨울에는 나목裸木이 되어 좌우대칭의 줄기들이 얼어붙은 파란 하늘의 캔버스에 그려내는 아름다운 수형을 몇 년 감상하기도 했다겨울에 푸르름을 지키는 소나무 잣나무만 알다가 낙엽 지는 활엽수가 보여주는 허공의 매력을 이때 알기도 했다메타세쿼이아는 처음에는 같은 키였던 산수유를 어느새 두세 배로 압도하며 20년 만에 20m 넘게 성장했다이 그늘에 묻힌 산수유는 햇볕이 부족하여 꽃도 많이 피지 못했고 당연히 빨간 열매도 적게 열리며 잎들만 무성해졌다물이 많은 곳이기도 했지만 나무그늘이 점점 짙어지자 항상 습기가 맴돌았다전망을 보자는 뜻도 있었지만 집 안팎의 습기 제거를 위해서도 산수유를 모두 베야 했다같은 때 수간거리를 생각해서 띄엄띄엄 심은 뒤뜰의 산수유는 제법 거목의 풍채가 보이는데 가까운 미래도 예측하지 못하고 숲속의 집이라는 주술에 빠진 내가 이곳에 촘촘하게 심은 산수유는 그 생을 다하고 꽃잠에 들게 했다.

사람의 통찰력이 대단할 것 같지만 눈앞에 직접 보이는 것 바로 뒷모습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전혀 볼 수는 없는 것이다베어낸 산수유에 가려졌던 메타세쿼이아의 우람한 몸통이 나 여기 있다고 소리치며 달려왔다크게 자란 수형에만 눈이 익숙했지 이런 굵은 뿌리에서 솟구친 한 아름이 넘는 몸통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아들의 미시건대학 유학시절인 2010년 여행 중에 샌프란시스코의 무이르MUIR 국립공원에서 보았던 원시림 속의 두 사람이 드나드는 거목의 환영이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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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송의 파천播遷

 

3년 전에는 집 앞뒤에 정성을 다해 키우던 거대한 반송 두 그루를 나남수목원으로 옮기는 대역사를 치렀다처음 집 안 조경을 하면서 동네 조경업자가 20년 넘게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다던 반송이 탐나기 시작했다아들나무딸나무로 삼고 싶던 나의 반송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나무 생장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일천한 아마추어의 맹목적인 사랑의 과정이 상처로 얼룩질 수밖에 없었음을 아는 데는 또 20여 년이 흘러야 했다.

나무 사랑만 그러하겠는가그때 50 주변의 내 삶이 세상을 대하는 것도 서투른 실수투성이였을 것이고허망한 욕망의 주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나만은 하늘의 그물망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만에 취해 있을 때였을 것이다하기는 마침 어렵게 출판한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전 21)가 밀리언셀러로 용틀임하려는 기운이 뻗쳐 가난한 사회과학출판사가 20년 고난의 문턱을 막 넘어서고 있을 무렵이기도 했다이후 토지는 두 차례의 밀리언셀러 정상을 훌쩍 넘겨 나남수목원 조성에 큰 힘이 된 착한 자본이 되었다.

몇 달을 밀고 당기다 조경업자가 선심 쓰듯 넘겨준 반송 한 그루 몸값으로 밭 30평 값인 거금 500만 원을 기꺼이 바쳤다아마추어가 수업료로 여기며 나중에 크게 바가지를 썼다는 말에는 쉬이 곁을 내주지 않았고이렇게 잘생기고 큰 반송의 몸값은 함부로 매길 수 없는 것이라고 항변했다이 반송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생명의 초록빛 향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어렵게 안은 내 첫사랑을 시샘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그다음 해에는 옮겨 심은 후유증을 앓듯 몸살을 하기에 나도 맞아본 적 없는 영양제 링거병을 달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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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뒤에서 반송 두 그루는 우아한 수세를 뽐내며 우리 집의 자랑스러운 상징목으로 무럭무럭 자랐다초등학생이던 남매도 대학생이 되었다봄날 일정한 크기로 봉긋하게 솟아나는 새순들의 열병식은 생명의 환희를 매년 선물했다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히어리산수유매화철쭉꽃들의 군무群舞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나며 서른을 넘기는 굵은 황장목 줄기가 받쳐주는 넓은 진녹색 초가지붕 같은 환상의 자태에 나의 자부심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이 반송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나남수목원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반송 조경수 단지를 꿈꾸며 12년생 반송 3,300그루를 가꾸기 시작했다반송 사랑에 빠져 봄마다 순을 치고 가지를 다듬으며 15여 년 후에는 우리 집의 반송처럼 클 것이라는 희망에 들떠 힘든지도 몰랐다한 그루씩 만져주며 말을 붙이다 보면 어느새 또 한 해가 훌쩍 지나갔다때로 축복은 위기의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고 했다이 반송의 축복이 그러했다.

 

5년 전 유난히 긴 장마가 덮쳤다우리 집 뒤뜰의 반송이 비에 젖은 제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굵은 아랫줄기 하나가 맥없이 찢겨 나갔다아름다운 좌우대칭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한쪽 아래가 뻥 뚫렸다생명에 대한 경외만이 아니라 그간 쏟아부은 사랑이 일시에 무너지는 먹먹함을 견딜 수 없었다아무리 서툴고 풋내나는 첫사랑이더라도 너무 겉모습에만 취한 채 무엇이 이를 견뎌내게 하는지를 전혀 모른 나의 무지한 반송 사랑이었음을 한탄해야 했다자랄수록 반경이 넓어지는 반송의 윗부분이 한겨울 폭설에는 눈의 무게를 견디는 모습이 안타까워 일일이 걷어내기도 했지만한여름 비에 젖은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가지에서 솟는 솔잎들의 무게를 견뎌낼 만큼 큰 줄기가 튼튼해질 때까지는 하늘이 보일 때까지 잔가지를 일일이 쳐내 바람길과 햇볕길을 만들면서 하중을 줄여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었다그저 줄기에 잔가지가 하나둘 늘어 녹색 초가지붕 수형이 넓어지고 풍성해질 때마다 기뻐하며 애지중지했다지구 중력의 자연법칙 위반은 고사하고 작은 머리에 감당 못 할 큰 감투를 쓴 허영을 실체로 알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사랑스런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한참을 고심했다그동안 선무당 같은 얼치기들을 많이 겪어서인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문할 데도 없었고이제는 생태계의 당연한 비밀도 어렴풋이 눈치챈 마당에 평생을 같이할아니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 이 땅에 살아남을 이 녀석의 미래를 내 나름의 감각으로 감당하기로 했다반송 사랑도 벌써 20년에 가깝지 않은가아마추어를 벗어나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길로 홀로 서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내 몫이기도 했다가끔은 치열한 독학의 아마추어가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문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어설픈 신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반송 특유의 균형감을 찾기 위해 가지를 다듬고 찢겨진 가지의 죄 없는 반대편 굵은 가지까지 베어내자 눈에 선 생뚱맞은 반송이 되었다단정했던 아름다운 긴 생머리 소녀가 강제로 삭발당한 선머슴아이처럼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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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를 보지 않은 앞뜰의 반송도 꿈꾸던 단정한 녹색우산의 수형 대신 건강하게 키우는 일이 우선이다 싶어 지나칠 정도의 전지작업으로 입대한 청년이 듬성듬성 쥐 파먹듯 깎은 머리처럼 어색한 모습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반송과의 어설픈 첫사랑은 그렇게 끝났다회한과 어떤 그리움과 속죄의 마음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 삼사 년을 지켜보며 순치기와 가지를 다듬어 새로운 얼굴의 반송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반송은 스스로 자연치유의 생명력으로 새롭게 가지를 내어 빈 공간을 채워 건강한 청년이 활짝 어깨를 편 역동적인 수형樹形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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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워야 더 크게 채운다.

 

아무도 손잡고 가르쳐주지 않았던 이때의 큰 경험을 스스로의 지혜로 승화시켜 매년 3천 그루 넘는 수목원 반송들의 순치기와 가지치기로 바람길 햇볕길 내기에 더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었음은 생명에 대한 애착 그 이상이었다그렇게 반송과 함께한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는다그리고 이러한 몸부림은 어느 나무 밑에 묻힐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업으로 체화되어 갈 것이다가꾸기가 그렇게 힘든 반송을 사랑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웃어야 한다이미 어떤 선택의 출구도 없는 내 운명이 되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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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한 대장부가 되어 더 많은 햇볕이 필요한 반송 주변에는 숲 향기를 더 맡을 욕심으로 심었던 계수나무가 상상 이상으로 우거졌고성장 탄력을 받은 느티나무는 아예 동네 정자나무의 위상으로 반송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했다더 넓은 확 트인 공간으로 옮겨 달라는 애원의 표정이 역력했다우리 집의 진입로 주변도 20년이 지나자 여기저기 건물이 들어서서 갈수록 이 큰 반송이 빠져나갈 수 있으려나 걱정도 커져 갔다이사할 터를 마련하기 위해 수목원 인수전 앞의 잔디밭에 이제는 자기 집처럼 의젓하게 자리 잡은 10년 전 한탄강 댐 공사로 수몰되기 직전에 구출해낸 정자나무 같은 느티나무 세 그루와 은행나무 한 그루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 했다거목이 된 이들을 수목원 곳곳에 그늘이 필요한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두 반송을 앉히는 대역사에 여러 날 보람찬 땀을 흘려야 했다.

두세 차의 흙을 돋운 봉긋한 기반에 영생을 살라고 안착시킨 두 반송은 다음 한 해는 몸살을 하는지 솔방울을 잔뜩 맺더니만 또 새봄을 맞아서는 이내 기운을 되찾아 새순을 터트리며 웅자雄姿를 드러냈다이제 새로운 땅의 지신地神밟기를 끝낸 듯 했다넓은 땅에서 3,300 그루의 반송들을 뒤에 거느리고 용틀임하듯 활짝 날개를 펴기 시작하는 자세가 이를 데 없이 늠름하다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의 대붕大鵬 이야기가 스치기도 한다그의 초인적인 지혜와 안목과 기백을 어찌 세속의 작은 날짐승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수목원에서 가장 고요한 인수전仁壽殿 마루에 편하게 걸터앉아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행복은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인가그리고 또 얼마나 짧을 것인가나의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이 반송 밑에 묻혀 몇백 년이라도 그들과 맘껏 뛰노는 축제의 나날을 함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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