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 숲'을 다녀와 든 생각
작성일 : 22.08.11   조회수 : 477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꿈에서 시작된다. 그 꿈은 처음에는 작고 미미하지만 대범한 발걸음의 실천으로 위대한 현실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고 최종현崔鍾賢(1929~1998) SK 회장이 조성한 생명의 숲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50년 전에는 더욱 오지였을 충주호 주변의 인등산 중턱에 감추어진 듯 조그만 ‘SK임업’ 표지판이 수줍게 반긴다. 지나다니는 길손들은 이곳이 에너지, 화학, 정보통신기술ICT, 반도체 · 소재 등 사업에서 연매출 170조 원을 넘는 세계적 대기업 SK의 임업회사라고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

그 겸손과 고집의 최 회장은 국가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척박한 민둥산에 꿈나무인 묘목을 심었다. 이때 새마을사업으로 마을마다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면서 생겨난 처치 곤란한 몇십 년 묵은 대량의 ‘썩은새’를 모아 훌륭한 거름으로 사용했다는 반짝이는 전설도 있다.


1970년대 초반은 오일쇼크로 세계 경제가 어수선했고, 회사는 석유사업 신규 진출로 강행군을 펼칠 때다. 그 와중에 최고경영자가 인등산에서 묘목을 심었으니 누가 보면 한가하다 했을 것이다. 그는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한국을 이끌 젊은 엘리트를 키우고 다른 한편에선 나무를 심었다. 이곳 인등산 360만 평에 100만 그루 가까운 자작나무와 가래나무가 이제 거대한 생명의 숲으로 장엄하게 다가온다. 자연의 시간을 읽어낸 거인의 발자취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이곳이 지금 SK 인재의 숲이자 ESG 경영의 탄소제로zero 심장으로 힘차게 박동칠 것을 그때 예비했는지 전율을 느낀다.


1부 65쪽. SK임업.jpg

최종현 SK회장이 부동산 수익이 보장되는 수도권을 버리고 멀리 산골 오지를 뒤져 조성한 충주 인등산 중턱의 SK임업의 숲.


나무 심는 일은 끈질기게 인내해야 하는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 자체다. 자연에 맞서거나 서둘러서도 안 되고, 그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의 몸가짐으로 열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 나무는 폭풍우에 뿌리가 흔들릴 때마다 미지의 땅속에 더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인고의 계절을 늠름하게 견뎌낸다. 이 초월과 해탈과 절대고독의 긴 여정을 가야 한다. 창업자의 그 나무 심는 마음의 DNA가 오랜 시간 숙성돼 오늘날 SK라는 거대한 숲을 이룩했지 싶다.


최종현 회장은 “수도권에 땅을 확보하면 나중에 조림지에도 보태고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주변의 권유를 “내가 땅 장수인 줄 아느냐”고 냉정하게 내쳤다고 한다. 수도권에 토지를 확보해 나무를 심고 가꾸다 이삼십 년이 지나 개발되면 부동산 가치는 엄청나겠지만 여태까지 가꾼 나무들이 그 자리를 잃을 것을 걱정해서였다.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통속한 비즈니스의 울타리를 훨씬 뛰어넘는 더 큰 가치를 나무 사랑에서 찾은 선각자의 결단이었다.


해서 최 회장은 부동산 수익이 보장되는 수도권을 버리고 멀리 오지 산골을 뒤졌다. 도와 도의 가파른 경계 지점인 충주 인등산, 천안 광덕산, 영동 시항산, 오산 등의 1,200만여 평 임야가 그것이다. 이곳에 자작나무, 가래나무, 흑호두나무, 루브라참나무 등 80여 종 330만 그루가 거대한 숲을 이룬다.


―――――――――――――


20여 년 전 나는 파주 적성에 자작나무,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아 묘목 1천 주를 심었다. 도로가 신설되고 땅값이 오르면서 10년 잘 키운 나무들을 옮겨야 했다. 최종현 회장의 형안炯眼을 일찍 알았더라면 두 번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들이 땅의 주인으로 영생할 녹색 공간을 마련한 것이 경기도 산골 포천의 20만 평 나남수목원이다.


국가의 미래를 나무와 숲이라고 여기고 40년 넘게 열정을 바쳐 가꾼 훌륭한 숲을 우리에게 선물한 큰바위얼굴들이 계셔서 우리는 살 만한 사회에서 사는 보람을 갖는다.


최종현 회장에 이어 <대한민국 녹색대상>을 받은 백제약품 · 초당산업 창업자 김기운金基運(1920∼2018) 회장의 전남 장흥 · 강진 초당림草堂林 300만 평에는 300만 그루 가까운 삼나무, 편백나무, 백합나무가 비밀의 정원을 이룬다. 임종국林種國(1915∼1987) 선생이 가꾼 전남 장성 축령산 160만 평의 편백나무 250만 그루와 삼나무 63만 그루가 어우러진 숲은 피톤치드의 세례를 받는 성지가 되었다. 선각자의 꿈은 하늘같이 높기만 하다.


 

이 글의 일부는 2022년 7월 15일 <매일경제>에 칼럼으로 기고하였습니다.




이전글 두 반송 이야기
다음글 언론 의병장의 꿈, 그리고 40년 ― 나남출판 30년에서 40년의 아름다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