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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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4.07 조회수 : 1414 | |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바이칼
바이칼 기행
사진 | 황평우 그냥 떠날 일이다. 설날 집안일들이 마음에 걸렸으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는 더더 큰 아버지가 사셨을 그곳에 다녀오겠다고 혼자 용서를 빌었다. 한겨울에 바이칼 호수를 알현하러 떠나는 길은 춥기도 하지만 멀기도 했다. 고구려를 자기 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같잖은 동북공정 소동이 알타이 민족의 시원(始原)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추동질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종록 소설가의 10년 넘는 바이칼 자랑을 잠재우려 거꾸로 엄동설한에 길을 나섰다. 사실은 혹독한 시베리아의 강추위 속에 자연 그대로의 자작숲에 다시 안겨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휴화산이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의 폭발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시속에 자꾸 찌들어가는 심신을 자학(自虐)하자는 것은 아니래도 어쩌면 야생의 대자연 속에 나를 던짐으로써 더 정직한 내 모습의 편린이라도 재발견해야 할 것 같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점인 블라디보스토크의 시가지. 러시아혁명의 완결점이기도 하다.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문
먼저 72시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가서 다시 버스로 8시간을 가야 바이칼이다. 횡단열차의 시발역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왔다. 항일운동가들이 일제의 칼날을 피해 러시아 국경을 넘어 신한촌(新韓村)을 건설했던 해삼위(海蔘威)라고 불렸던 곳이다. 정주영 회장이 북방의 웅지를 튼 계동 현대건설 사옥과 똑같은 외양의 현대호텔 건물이 반갑다. 이곳에서 ‘삭풍회’의 전설을 듣는다. 해방이 되고 일제징병에 끌려간 한국청년들도 패전국 일본의 관동군으로 분류되어 시베리아 개발의 강제노동에 동원된다. 나라를 되찾았으나 50년 가까운 냉전상태는 그들을 적성국가 인민으로 간주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 관심도 두지 못한 죄송스러움에 고개를 떨군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꼬박 3일 동안 횡단열차의 4인실 쿠페에서 고승철 주필, 한겨레 김종구 국장, 문화재 대장 지킴이 황평우 학형과 먹고 자고 뒹굴며, 데카메론적인 이야기에 푹 빠진다. 기차가 삶을 느리게 살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벌써 자연의 일부가 되어 매일 밤 시베리아의 달빛에 젖는다. 잠시 정차하는 간이역에서 내려 동토(凍土)의 왕국을 건설한 현지민들의 생활이라도 엿보려다 보면 강추위의 환영 역풍을 맞기 마련이다.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데 덜컹거리는 열차의 진동으로 배낭에 걸어두었던 컵이 떨어져 콧날 위에 생채기를 낸다. 나중에 보도를 보니 그 시각쯤에 우랄산맥 동쪽에 커다란 운석이 떨어졌다 한다. 우주의 신호에 감응하는 선혈의 피를 시베리아에 뿌린 셈이다.
좁은 공간에서 원고 쓰기
횡단열차 복도에서 자작나무숲 구경하기
잠깐 기차가 정차하는 틈에 시베리아 사람들의 삶을 구경하러 나서기도 한다. 기차역사 앞의 얼음조각이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여유를 보이고 있다.
데카브리스트의 유배지로 짐작되는 간이역 같은 곳을 무심하게 지나던 열차는 이제 꽁꽁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를 둥그렇게 감싸며 달린다. ‘바이칼이다’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와 열차를 흔든다. 설원 속에 파묻힌 바이칼을 어림짐작으로 그려 볼 뿐 아직은 맨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액자사진의 슬라이드처럼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연 그대로의 눈에 파묻힌 태고의 원시림인 타이가 대산림을 온통 뒤덮은 자작나무숲에 지칠 때쯤이면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북유럽의 파리라면 시베리아의 파리는 이곳이다.
아! 이르쿠츠크
횡단열차 창가에서 본 바다 같은 바이칼 호의 얼어붙은 한겨울 모습
3일 동안 숱한 시베리아의 자작나무숲을 스쳐 지나야 했다.
이르쿠츠크 시내 메리어트 호텔 앞. '이르쿠츠크 바이칼'의 문구가 선명한 관광버스
이광수의 〈유정〉(有情)에서 남정임은 바이칼 호변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구가하고, 이제는 폐선이 된 환바이칼 횡단열차 일부 구간은 관광열차가 한가롭게 달린다. 러시아 혁명 기간 중의 적군파와 백군파가 혈전을 벌여야 했던 이르쿠츠크 대첩의 〈제독의 연인〉이나, 데카브리스트의 애잔한 사랑을 그린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영화가 여기서 촬영했다 한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었으나 그때 함께 개봉되었던 〈타이타닉〉의 광풍에 휘말려 침몰하고 만다. 가난한 시인인 닥터 지바고가 설원의 자작나무 궁전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성에가 얼어붙은 유리창에 사랑의 시를 썼던 영화는 예상외로 이곳이 아닌 스페인 세트장에서 만들었다 한다.
설원의 바이칼
바이칼 호수의 알혼 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까지는 8시간을 버스로 달려야 한다. 시베리아의 눈발은 습기가 없어서 바람에 날리므로 눈길 버스운행이 가능하다. 한겨울이라선지 오가는 차량이 뜸해 설원을 가르는 우리의 행군은 조금은 외로워 보일 수도 있겠다. 우리의 솟대 같은 세르게 기둥이 곳곳에서 우리의 안녕을 비는 듯 추위 속에 서 있다. 나뭇가지나 나무 허리에 묶어둔 소망을 비는 형형색색의 헝겊인 지아라가 삭풍에 떨고 있다. 잠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자작나무 처녀림을 직접 만져보기 위해서는 무릎 넘게 빠지는 순은(純銀)의 눈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에 버스를 세우고 폭설에 잠긴 자작나무숲에 들어갔다. 그들의 체온을 안아보고 싶어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 나가야 했다.
그들의 토테미즘인 우리의 솟대와 같은 세르게. 이 시베리아 벌판에서 무엇을 그렇게 기원했을까.
선착장에는 미지의 세계로의 입국수속 절차도 없다. 바이칼을 눈앞에 두고 마음을 설레는 착한 인간의 얼굴을 한 우리들만이 강파른 혹한의 바람을 맞으며 설원 위에 서 있다. 마중 나온 개조된 지프에 실려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를 달려 알혼섬에 바로 상륙한다. 흙먼지 날리는 이 길을 50분쯤 달리면 성스러운 불한 바위가 있다.
영하 40도의 혹한에 얼어붙은 불한 바위. 여름의 북적대던 인파에 시달렸던 이곳도 웅장한 신비만 가득하다.
바이칼의 장엄함과 생명력에 경배할 일이다. 세계 민물의 20%, 세계 식수의 80%, 세계인류가 40년을 먹을 수 있는 바다 같은 호수, 생성된 지 3천만 년이나 되었다는데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물이 바이칼이다. 화석(化石)으로밖에 지구 생성의 생태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지만 오직 이 물만이 지구 최고령의 자연의 신비가 살아 꿈틀대는 성소다.
불한 바위 앞 꽁꽁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에서
세상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바이칼 호. 세계 민물의 20퍼센트가 담겨 있다. 부르는 이름도 많다. 성스러운 바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 시베리아의 진주가 그것이다. 가장 깨끗한 민물의 보물창고이어선지 가장자리의 얼음은 수십미터 물속까지 비추어 준다. 투명한 블루처럼. 현대 기계공학이 흉내 낼 수 없는 기하학적인 디자인이 더욱 자연스럽다.
섣달그믐의 바이칼 호수는 주변의 하얀 산까지 아우른 광대무변의 설국 그 자체이다. 한여름의 바이칼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대양인지 알 수 없다는데 지금은 장자(莊子)의 대붕(大鵬)이 날갯짓 치기에도 어려운 광활한 설원 그 자체다. 1미터 넘게 얼어붙어 콘크리트보다 더 튼튼하다는 바이칼 위를 지프로 달린다. 불한 바위 앞에 선다. 바다 같은 호수의 잔물결들이 원형 그대로 겹겹이 얼어붙은 빙판 더미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성스러운 불한 바위를 만지며 마음에 품는다. 거대한 생명의 살아있는 지구의 자궁이 이곳임을 선험적으로라도 느껴야 한다. 최남선은 불함문화론에서 이곳을 민족의 시원(始原)으로 읽어냈다.
호숫가의 빙판은 현대 건축 디자인이 흉내 낼 수 없는 곡선과 직선을 교차시키며 얼음 틈으로 투명한 맨바닥을 잠시 보여준다. 방위를 알 수 없고 굳이 찾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눈의 제국 곳곳을 질주했다. 빙판 위에서 바이칼 특산의 청어인 오물과 검은 빵으로 점심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우주의 큰 신으로부터 영성체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환상이 스쳤다.
저녁에는 ‘바냐’라는 러시아식 사우나에 바이칼의 환상체험에 얼어붙은 몸을 맡겼다. 이 의식을 위하여는 영하 35도의 추위가 짝하여도 괜찮다. 자작나무 통나무의 뜨거운 훈증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회개(悔改)해야 하는 자학(自虐)은 아니지만 자작나무 가지로 땀에 젖은 온몸을 때린다. 자작나무의 향이 온몸을 감싸며 몽혼한 기분이 든다. 옛날 초야(初夜)에 자작나무 조각들로 화촉(樺燭)을 밝히며 새 생명의 잉태를 기원했던 그 불빛과 향기가 어른거리는 것 같다.
바이칼의 마지막 밤에는 별들의 폭포를 보아야 한다. 가없는 빙판에 반사되는 별빛도 금방 얼어붙는다. 오늘 밤 얼어붙은 별 하나를 내 가슴에 품어야 하는 우주의 신비를 겸허하게 세례(洗禮)받아야 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시베리아의 푸른 눈, 초승달 모양의 바이칼은 이제 만월(滿月)의 달로 두둥실 떠오를 일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끝닿은 데 없는 민족의 시원을 여기에서 찾을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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