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말한다] 잭 웨더포드 著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작성일 : 05.07.11   조회수 : 1637

이코노미스트 | 796호, 2005. 7. 11.


[이 책을 말한다] 잭 웨더포드 著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한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책을 펼치면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서 다른 사람들이 일군 치열한 삶의 공간이 있다. 인문지식을 배운다는 공리적 의미의 책 읽기가 대부분이지만 간접경험이라는 한계를 넘어 벌거벗은 그대로 신세계에 젖어 든 채 잊혀 가는 이의 땀 냄새에 푹 취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그것은 동시대를 사는 다른 사람들의 길일 수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길일 수도 있다.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관이 형성되거나 인생관이 바뀔 수도 있는가 하면 사람과 사람이 질서를 만들고 사는 데 불가결한 인간경영의 아이디어들을 얻기도 한다. 그 길은 사업계획 구상에 긴요한 아이디어를 얻는 길일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그랬지만, 성공한 디지털 벤처 사업가들이 하나같이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 게 아날로그의 전형인 책이라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칭기즈 칸(책 제목의 ‘칭기스 칸’을 제외하고 본문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칭기즈 칸’으로 적습니다)이 연 대장정의 길을 좋아한다. 그의 선택과 집중, 끝 간 데 없는 실천과 함께 그가 일궈낸 세계적 보편주의가 좋다. 솔직히 말해 늘 푸른 하늘을 꿈꾸며 세계사 최후의 대형 부족제국을 이룬 칭기즈칸의 길을 따라 말을 달리다 보면 60년 가까이 분단된 한반도 남쪽, 섬 같지도 않은 섬에 갇힌 채 앓던 폐쇄공포증을 잠시나마 털고 해방의 짜릿함에 들뜨곤 했다. 강요된 국토 분단으로 실제 삶과 정신세계의 터전이던 대륙과 멀어지고, 이념투쟁과 지배권력의 골목대장 노릇으로 숨 막히던 이곳에서 자꾸 왜소해지기만 할 뿐인 나 자신에게 식상해 할 때 칭기즈칸은 얼마나 삽상하면서도 위대한 출구였던가.

갇힌 사회에서 이만큼이라도 견딜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의 열린 세상이 뽐내는 푸른 공간과 대륙의 호수 바이칼의 청량함을 한쪽에 예비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필자만의 소회가 아니듯이 칭기즈칸에 관해서는 그동안 많은 책이 출판되고 인구에 회자돼 왔다.

어떤 이들은 그의 천재적인 전쟁수행 능력과 전례 없는 규모의 제국 통치술부터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세계경영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부하들에게서 충성심을 이끌어 내는 수완을 조직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해 인간경영에 접목하기도 했다. 정주(定住) 의식에 얽매인 단세포적인 사람들은 바람의 아들인 유목민이 발휘한 자유혼을 노마드 의식이라 부르며 부러워했다. 칭기즈칸의 복권은 그의 고향 몽골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먼저 이뤄졌는지도 모른다.

인류학자 잭 웨더포드가 쓰고, 정영목이 유려한 문체로 번역해 얼마 전 선보인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사계절출판사, 2005)는 칭기즈칸이 세계경영과 인간경영에 도입한 혁명적 발상을 유럽인의 시각에서 찾고 있다. 칭기즈칸은 혈연적 유대가 아닌 자신에게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해 가공의 친족 관계가 생물학적 친족의 유대보다 유용함을 증명했다. 또 그에게 지도력의 첫 번째 열쇠는 자만심과 분노를 극복하는 자기절제였다. 실생활에서도 물질적 천박함이나 허튼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수수함과 소박함을 강력한 리더십의 자양분으로 보았다.

서진(西進)하던 칭기즈칸의 대장정이 다뉴브 강가, 곧 오늘날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멈춘 것은 중세의 몽매함으로 뒤엉켜 있던 서유럽에서 빼앗거나 배울 만한 문물이 없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불에 탄 산정의 수도원만이 지금도 그들이 다녀간 전승(戰勝)의 경계비로 그곳에 의연히 남아 있다. 지지부진한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끝날 즈음 맞닥뜨린 몽골군은 유럽인에게는 황화론(黃禍論)이 횡행하기에 충분할 만한 공포,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초원의 일상생활이 언제든지 비극이나 죽음으로 바뀔 수 있는 척박한 환경의 살벌한 부족세계에서 유럽의 기사도는 사치스러운 장식품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유럽이 정복의 말발굽에 그저 농락만 당했던 건 아니다. 서유럽 세계는 칭기즈칸의 대장정 와중에 실려 온 몽골 문명의 수혜자가 돼 르네상스라 불리는 근대의 여명을 맞이하고, 이후 제국주의의 길을 닦을 발판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종이와 인쇄술, 화약과 화기, 나침반을 비롯한 과학장비의 광범한 영향으로 르네상스를 경험하면서 유럽인은 문자 그대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 것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세계가 아니라 유럽인이 자신의 요구와 문화에 맞게 고르고 옮겨 바꾸어놓은 몽골제국, 팍스 몽골리카였다. 근대 서유럽을 세계사의 중심이자 문명적 진보의 뿌리로 간주하는 지식세계의 통념이 얼마나 유럽 세계의 ‘나르시시즘적 주술’에 함몰돼 있는지 통렬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700년 전 실크로드 위에 펼쳐진 대장정은 칭기즈칸이 창안한 역참제(驛站制)가 신속하고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기능하면서 가능했다. 그토록 방대한 규모의 영토를 아우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길 덕이었다. 이 길목에서 나는 세계를 한 가슴에 품으며 이질적 지역 단위들을 몽골제국이란 단일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각 단위 간에 이뤄지는 교섭과 흐름을 조율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 긍정적 의미의 문명 간 교류와 상호 변용을 이뤄낸 통치자의 ‘위대한 겸손’을 본다.

특정 지역의 문화나 자원을 차지해 내 것으로 만들기보다 그것들이 넘나들 길을 열고 잇고자 했던 팍스 몽골리카. 그때의 늘 푸른 하늘은 지금 잿빛으로 물들고 말았지만 늘 푸름을 추구하던 칭기즈칸의 빛나는 리더십은 여전히 거대한 울림으로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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