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이사장 에세이언론이 본 나남 조상호

“본업 출판을 지키고 권력 유혹 벗어나려 나무를 심는다”
매체명 : 한겨레   게재일 : 2015-06-09   조회수 : 1357

한겨레 | 2015. 6. 9.

 

“본업 출판을 지키고 권력 유혹 벗어나려 나무를 심는다”

 

 

자전에세이 《나무 심는 마음》 펴낸 조상호 회장

 

1979년 설립 이래 36년 동안 2,800여 종의 책을 펴낸 국내 대표 출판인 조상호(66) 나남출판사 회장은 요즘 책의 재료인 나무를 키우는 데 더 정성을 쏟고 있다. 경기도 포천 신북면의 산자락 66만㎡(약 20만 평)에 8년째 나남수목원을 가꾸고 있다. 지난해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에 소개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그의 수목원 이야기를 최근 책으로 펴냈다.

 

자전에세이집 《나무 심는 마음》은 나무이야기ㆍ사람이야기ㆍ여행기ㆍ다른 이들이 본 그에 대한 이야기로 짜였다. “나와 남이 어울려 사는 우리”라는 순우리말인 출판사 이름 ‘나남’처럼 책의 구성도 그렇게 했다. ‘나’ 조 회장이 본 나무와 조지훈 선생과 세상 이야기로 시작해서 ‘남’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포천 신북면 8년째 ‘나남수목원’ 가꿔

출판수익ㆍ자택매매ㆍ사옥 대출까지

사저 쏟아부어 20만 평 50만 그루 심어

 

2011년 산사태 수천 그루 잃는 고비도

국내외 유명 수목원 답사하며 ‘독학’

책 박물관 지어 공유 계획…"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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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

 

 

지난 8일 오후 파주 출판단지 나남 사무실에서 만난 조 회장에게 두 가지 ‘우문’부터 던졌다. ‘20만 평의 땅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지, 그동안 권수로 친다면 몇 권의 책을 냈는지’ 물었다. 그동안 책 만드느라 베어낸 나무가 엄청날 테니 그에 대한 갚음을 하고자 숲을 가꾼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3ㆍ3㎡(1평)에 세 그루씩 있다고 계산하면 임도 빼고 약 50만 그루쯤 되지 않을까”라고 진지하게 답했다. 또 즉석에서 출판사의 기획실장에게 그동안 발행한 책의 종이 무게를 계산해보게 했다. “초판만 대상으로, 권당 300쪽으로 잡아도 16억 쪽. 거기에 스테디셀러 박경리 선생의 《토지》만 300만 부에 9억 쪽, 합하면 80g 미모 국전지 기준으로 3,852톤의 종이가 들어간 셈이다.” 너무나 변수가 많지만, 대략 나무 한 그루로 10권의 종이를 만든다고 했을 때 8천 그루 정도의 나무를 소비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나남에서는 책을 더 만들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양이다.

 

지난해 말 〈제네시스〉 전시회에 맞춰 방한했던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고향 브라질의 리오 도체 계곡 일대에 1998년 이래 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덕분에 9만 7천 톤의 이산화탄소를 거둬들였고, 재규어가 서식할 정도로 먹이사슬이 회복되었다고 자랑했다. 36년간 책으로 번 돈을 거의 쏟아붓고, 서초동 자택도 팔고, 강남 요지에 있는 옛 사옥 건물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수목원을 가꿔온 조 회장의 열정과 성과도 결코 뒤지지 않을 법하다.

 

도대체 왜 나무를 심는 것일까. “취미와 직업은 같지 않다. 다만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수는 왕왕 있겠다. 내 본업인 출판을 지키기 위해, 계속 꾸려나가기 위해 정치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무를 심는다. 나무를 닮고 싶다. 청년 시절부터 사숙했던 지훈 선생의 뜻을 따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수목원의 나무 한 그루 밑에 묻히고 싶다.” “치밀하게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 만에 결심한 것도 아니다. 20년간 준비했지만 계산을 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추어가 큰일을 낸다는 것은 아마추어니까 가능하다는 말과 같다. 프로라면 시작도 하지 않고 접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고비도 있었다.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가 났던 날, 수목원의 산자락이 통째 휩쓸려가 버렸다. 송전선 철탑 축대가 무너지면서 골짜기가 내려앉았고 내 가슴도 무너졌다. 100살 넘은 산뽕나무가 죽고 출판사 식구들이 정성스레 심고 잡초를 뽑으며 애지중지하던 헛개나무, 음나무, 밤나무 묘목들 3천 그루의 밭이 통째 묻히고 떠내려갔다. 그때가 승부처가 된 셈이다. 그때 손을 털었으면 끝이었는데 하나씩 다시 시작했다.”

 

비전문가로서 수목원을 만들기까지 공부는 필수적이었다. “통영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외도수목원,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 용인 한택수목원 등 전국 곳곳을 수시로 답사했다. 뉴욕주립대식물원, 뮌헨의 프렌치가든 같은 세계적인 명소도 다녀왔다. 많이 배웠는데 결론은 ‘내 식대로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참고는 되었지만 다른 곳과 나남이 같을 순 없다는 뜻이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출판인은 도서목록으로 말한다면, 수목원은 수종으로 말한다. 애정이 가는, 스토리텔링이 되는 나무를 심어왔다.”

 

조 회장은 주말마다 수목원에서 일을 한다. 올해 들어서도 80년 넘는 거목을 포함해 느티나무 20그루를 심었다. 수목원 입구에서 인사를 하는 상징목인 셈이다. 봄에는 산벚나무 꽃그늘이 좋았다. 회화나무, 보리수, 수해로 쓰러졌던 산뽕나무의 후계목, 자귀나무와 귀룽나무도 심었다. 오래오래 키워야 하는 눈주목 100그루, 가장 더디게 자란다는 구상나무도 식구가 되었다.

 

2016년 5월 개관을 목표로 ‘김우창아카이브’를 포한한 책박물관의 착공을 앞두고 있는 그는 앞으로 수목원을 작가ㆍ출판인ㆍ예술인들과 함께 하는 문화공간으로 공유하는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쑥스럽기도 하다. 이건 겸손의 표현이 아니다. 우리 사회엔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꿈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글ㆍ사진 |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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