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이사장 에세이언론이 본 나남 조상호

[집이 사람이다] ‘책장수’는 고향 동네 대나무숲을 사무실로 옮겨왔다
매체명 : 경향신문   게재일 : 2016-01-15   조회수 : 860
경향신문 | 2016. 1. 15.

 

[집이 사람이다] ‘책장수’는 고향 동네 대나무숲을 사무실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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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출판 사옥 벽면의 담쟁이덩굴.

 

 

언론인 꿈꾸던 대학생에서 수배자로 은행원 거쳐 출판인으로…

파란만장한 이력이 그의 사무실에 담겨 있다

먼 길 달려온 그는 나무가 있는 공간에서 가끔 멈춰 쉰다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65)의 사무실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매우 넓고 호사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느낌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책장사를 해서도 이만한 사무실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쇼룸”이었기 때문이다. 족히 50평은 되는 공간에 물이 졸졸 흐르는 미니 정원과 화분, 서예, 그림, 조각, 수석, 가구, 바둑판, 그리고 긴 책꽂이가 놓여 있었다. 이런 ‘쇼룸’ 사무실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나남의 37년 역사를 훑어야 한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조 대표는 청운의 꿈을 안고 1970년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한다. 원래 이과였지만 조지훈 시인이 강연하는 걸 보고 반해 문과로 돌렸다. 그러나 당시는 삼엄했던 박정희 군부체제 시절이었다. 언론인을 꿈꾸던 그는 2학년 때 교내 지하신문 ‘한맥’을 만들다 수배자 신세가 된다. 청계천변 판자촌 철거민을 집단 이주시킨 경기 광주대단지의 비참한 실상을 다룬 르포가 문제가 됐다. 이 기사가 북한신문에 남한의 실상으로 과장 보도되었다는 사실을 제적된 다음에 알았다. 22살의 도망자가 된 그는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원주로 향한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넝마주이로 일하고, 기원에서 내기 바둑을 두며 쪽잠을 잤다. 위수령이 발동하고 제적자가 된 그는 학교 앞에서 붙잡혀 군대에 끌려가 강원도 방책선의 소총수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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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 로비에 놓인 무쇠난로와 수목원에서 가져온 통나무 땔감. 사진 속 나무는 울진대왕송이다.

 

 

제대한 뒤 다행히 복학해 대학을 졸업한다. 그러나 ‘별’을 단 이상, 취업은 언감생심이었다. 결혼하려면 버젓한 직업이 필요할 것 같아 지인의 신원보증으로 은행원 생활을 몇 년 하다가 1979년 5월 나남출판사를 차렸다. 나와 남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을 상호로 택한 나남은 제도권 언론이 감당하지 못하는 군사독재 비판의 한 우회로로써 출판저널리즘을 표방했다. 첫 책은 버트런드 러셀의 〈희망의 철학〉이었다. 지금 2000호를 바라보는 나남신서 1번이다. 이어 E. H. 카의 〈러시아 혁명〉, 미키 기요시의 〈철학입문〉이 나왔다.


조 대표는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1920~2011)의 회고록 〈장정〉을 펴낸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 1986년 ‘월간 경향’에 실린 김 전 총장의 연재원고 ‘나의 광복군 시절’을 보고 출판을 제안해 1987년 광복절에 2권짜리 〈나의 광복군 시절>이 나왔다. 이때부터 〈나의 대학총장 시절〉 〈나의 무직 시절〉 〈다시 대륙으로〉로 이어지는 5권의 〈김준엽 현대사-장정〉 시리즈가 2001년 11월 완간된다. 존경하는 스승과 함께한 15년 출판 장정이었다.


소설가 박경리(1926~2008)와의 인연도 남다르다. 운동권 선배인 김지하 시인과의 친분으로 그의 부인인 ‘영주 누나’(김영주 토지문학관장)와도 가까운 사이가 된다. 불교미술 연구자인 그의 책 〈신기론으로 본 한국미술사〉를 내면서 필자로서의 인연도 맺게 되는데, 그것이 어머니까지 이어졌다. 30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김약국의 딸들〉이 드라마 계약을 맺은 직후, 영주 누나는 ‘외동딸의 책을 그렇게 호화스럽게 출판해준 데 대한 어머니의 고마움’이라며 책을 들고 온다. 1993년의 일이다. 이 책은 엉뚱하게도 그해 여름 의사와 한의사들의 진료영역 분쟁을 겪으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한동안 출판이 중단됐던 〈토지〉 12권도 2001년 나남에서 출간돼 밀리언셀러가 됨으로써 출판사의 터전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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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옆에 마련된 미니 정원 사이로 책상에 앉은 조상호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은 조지훈 시인(1920~1968)이다. 자신의 진로를 바꿀 만큼 청소년 때부터 흠모하며 사숙했던 선비정신의 표상, 조지훈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지훈상을 만들어 문학상과 국학상 2개 부문을 지금까지 수상해오고 있다. 고문과 운영위원장은 계속 바뀌었지만, 상임운영위원은 조 대표 자신이 계속 맡아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출판사를 세우던 1979년 태어난 아들 이름은 조지훈이고, 파주출판단지로 이사 오기 전 양재역 인근에 있던 사옥은 지훈빌딩이었다.


이런 역사를 이해하면 넓고 호사스럽게만 보였던 사무실의 모습이 차츰 갈피가 잡힌다. 사무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작은 책상 위에 놓인 바둑판은 수배시절의 산물이다. 기원의 내기 바둑 맞수로 시작해 갈고 닦은 그의 바둑 실력은 아마 5단이다. 책상 옆에는 조지훈 시인의 부인 김난희 여사가 쓴 한글서예 족자가 걸려 있다. 지훈상을 운영하는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책상 주변에는 ‘나의 보물’로 꼽는 물건들이 놓여 있다. 보물 1호는 1993년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백제 금동용봉 봉래산 향로이다. 64㎝의 실물대 모형으로 유리상자 안에 반듯이 모셔져 있다. “김종규 전 한국박물관협회장도 70% 축소판을 갖고 있을 만큼 귀한 물건”이라고 자랑한다. 망중한의 시간에 향로를 쳐다보면 선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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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는 20년 넘게 써온 서예로 지훈상 수상통지문을 직접 쓴다.


 

보물 2호는 인생훈인 이희봉 선생의 글씨를 비롯해 단하 김영두, 강암 송성용, 목촌 예춘호 선생들의 서화이다. 고려대 법학과 은사인 이희봉 선생은 그의 주례를 선 다음,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불원천 불우인 하학이상달 지아자 기천호)’라는 휘호를 선물했다. 〈논어〉 헌문편 37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으로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늘을 원망하지 말며 사람을 탓하지 말라. 다만 아래로 배워서 위로 통달하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인가 보다’라는 뜻이다. 결국 하늘이 알아줄 텐데 조급하게 뭔가 이루려고 안달하거나, 조금 이루었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뜻을 이루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새겨왔다.


김영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81년 퇴임기념논문집을 출판해준 조 대표에게 나남을 ‘奈南’으로 쓴 휘호를 선물했다. 한시 운을 맞추기 위해 한글 상호를 한문으로 쓴 것을 미안해하면서 나폴레옹(奈翁)과 같은 불굴의 용기로 남쪽 기름진 들녘을 가꾸라는 의미라는 설명까지 붙였다. 전주의 강암 선생은 역시 나남에서 책을 냈던 송하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의 부친이다. 풍죽 그림에 쓴 ‘抱節不爲霜雪改 成林終與鳳凰期(포절불위상설개 성림종여봉황기)’라는 화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처음 품었던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를 영원히 변치 말고, 대업을 이루었다 해도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이상을 향해 나아가라’는 뜻이다.


사무실 곳곳에서 자라는 식물 이야기는 따로 한 장을 할애해야 한다. 그가 사무실에서 나무를 키우기 시작한 건, 서초동 지훈빌딩 시절부터다. 고대교우회관, 서초동 살림집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다 1994년 번듯한 사옥을 마련했다. 양재역 인근의 대지 200평, 연면적 900평짜리 건물이었다. 살림집도 사옥으로 옮겨왔다. 파주출판단지 사옥까지 그가 계속 집과 사무실을 한 장소에 잡은 건 “바깥에 나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포박한 것”이었다. 위수령이 발동됐던 1971년 제적된 ‘71동지회’ 회원인 그에게 ‘민주주의가 누란의 위기인데 책장사만 할 거냐’는 유혹이 만만치 않았다.


갓 입주한 서초동 사옥에 요사채(절의 승려들이 거처하는 공간, 조 대표는 자신의 살림집을 이렇게 부른다)를 들여 지신을 밟고 사장실을 꾸미려는 때였다. 출판사에 놀러왔던 강현두 서울대 교수가 넓은 사무실을 보면서 ‘책장사를 해서도 이만한 사무실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라’고 했다. 클래식 마니아였던 김승현 고려대 교수는 자신의 거래처에서 진공관 앰프를 구입해 설치해 주고 클래식 CD를 선물했다. 지금도 그의 책상 옆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의 기원이다.


조 대표는 사무실 한쪽에 대나무를 심어 실내정원을 만들었다. “우리 고향 동네는 어디나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그는 어린 시절 뒤란에서 대나무가 내던 ‘서걱서걱’ 소리가 그리웠다. 사옥 앞마당에 30년 된 장송 세 그루와 앵두나무도 심었다. 이듬해 파주시 금촌면에 책 창고를 신축할 때 은행대출을 받으면서 은행 부실채권인 인근 적성면 임야 1만 5,000평을 떠맡았다. 이곳 적성농장에 자작나무 묘목을 심으면서 산림조합원이 되었다.


대나무는 파주출판사에도 있다. 조 대표의 사무실 책상 옆 미니 정원에 있고, 로비에 설치된 대형 화분에서도 2층 높이로 싱싱하게 자란다. 또 한 군데, 외부인은 들어가지 못하는 살림집 입구에도 직사각형으로 위가 하늘로 뚫린 유리온실 안에 들어있는 대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20년 전 적성에 심었던 자작나무가 큰 나무로 자라 사옥 뒤편으로 옮겨져 작은 숲을 이루었다. 사옥 벽은 담쟁이덩굴이다. 입주할 때 몇 년마다 한 번씩 사옥 건물을 도색해야 한다고 하기에, 아예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자연도색되는 담쟁이를 심었다.


나무를 향한 그의 꿈은 파주시 신북면 나남수목원으로 결실을 맺었다. 2008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20만 평의 나남수목원에는 잣나무, 산벚나무, 참나무 숲이 있다. 양지바른 곳에는 우리 사회에 공헌한 이들의 수목장을 위한 2,400그루의 반송을 심었다. 나남수목원 프로젝트는 10년간 가꾼 적성농장의 가운데를 지나는 도로신설계획 통지서가 날아들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키운 나무를 이식하는 게 안타까워서 경기 북부의 산지를 헤맨 끝에 만난 땅에서는 책 박물관 건립의 꿈이 영글고 있다.


그가 나무를 가꾸는 일에 열중하게 된 건 “가끔 멈춰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딱히 무엇을 하고 쉴 것인가도 몰랐다. 미지의 미래에 대한 정체 모를 불안이 두려웠다.”


그는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의 도피생활을 ‘내출혈의 제1장 제1과’라고 표현했다. 제적과 강제징집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성공적으로 보이는 그의 출판인생에서 내출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나이 50이 넘으면서는 나의 동물적인 감각이나 본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제법 컸다고 생각해서인지 선배들의 애정 어린 지도도 끝나가고 나 스스로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희봉 선생이 주신 인생훈 ‘下學而上達’(아래로 배워서 위로 통달하니)의 문제였다.


그는 언론인이 되지 않았으나 출판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언론학 전문서적을 내는 일로 젊은 시절 ‘언론 의병장’의 꿈을 이루었다. 출판이 상업화하고 그나마 상업출판의 기반마저 붕괴된 지금, 그에게 출판은 어떤 의미일까.


“학자가 논문으로, 판사가 판결로 말하듯 출판사는 출간목록으로 말한다. 좋은 책을 제작비가 없어 못 내지는 않는 형편이다. 늘 성실한 공부와 함께 저자의 목소리가 담긴 책을 찾고 있다.”


종이에서 나무로 확대됐던 이야기가 다시 종이와 활자로 돌아왔다.


 

조상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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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신문방송학과에서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ㆍ고려대ㆍ서강대 언론대학원 강사,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나남출판사 대표이사, 지훈상 상임운영위원, 나남수목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언론 의병장의 꿈〉 〈나무 심는 마음〉 등 수필집을 펴냈다.

 

글 | 한윤정 선임기자 yjhan@kyunghyang.com

사진 | 박기호 사진가 kistone9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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