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이사장 에세이언론이 본 나남 조상호

나무처럼 살다가 나무로 남겠소
매체명 : 월간바둑   게재일 : 2016-07-08   조회수 : 633

월간바둑 | 2016. 7. 8.

 

나무처럼 살다가 나무로 남겠소, 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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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음이 진동할 것 같았던 그에게서 나무와 풀 향기가 솔솔 뿜어져 나왔다.


세월이 지날수록 기품을 더해가는 고목처럼, 이파리를 떨구고 동천(冬天)을 우러르는 나목처럼, 시간을 등진 채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 하는 그가 "지구별에 잠시 소풍 나왔소"를 읊조리며 인생 2막을 나무와 함께하려 한다. '지구의 주인'인 나무처럼 살겠다 한다.


소꿉놀이 거두고 떠난 그 날에도 나무가 남으리라고, 나무는 남으리라고, 그 또한 나무로 남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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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대학 내 지하신문 제작 주모자로 몰려 고대 법학과에서 제적당했던 한 청년이 편견 없는 열린 광장을 지향하며 1979년에 설립해 올해로 37년째를 맞는 나남출판사. 언론으로서의 출판의 기능과 역학을 삶의 존재 이유로 삼았던 젊은 출판사 사장은 어느덧 이순을 훌쩍 넘겼다.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 라는 모토대로 그동안 펴낸 2천여 권이 넘는 서적 대부분은 무게감 있는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 속하는 종들이다. 나남에서 나온 책이라는 자체로 나름의 공신력을 인정받을 정도가 되기까지 조상호 회장의 남모를 고군분투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국사회에서 출판이 갖는 사회적 위상을 확립하고, 사상과 자유가 편견 없이 교통할 수 있는 지성의 열풍지대를 꿈꿨던 그의 바람도 나름 결실을 맺었다.

  

이런 나남출판사에서 얼마 전 바둑만화가 출간됐다. '발바리의 추억'으로 유명한 강철수 화백의 '무한묘수 1, 2'가 바로 그것. 아마5단 기력의 강철수 화백은 바둑의 묘미와 깊이, 그 안의 갈등과 고뇌를 만화로 녹여낼 수 있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미생, 응답하라 1988, 이세돌과-알파고 대결 등으로 점화된 바둑 열풍 속에서 문득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철수 화백의 만화를 즐겁게 보았던 기억을 떠올려 출간을 결심했다는 조상호 회장은 그 자신이 열성 바둑팬이다. 바둑 내용이 양념처럼 곳곳에 등장하는 무한묘수의 교열도 직접 보았다. 인문 사회과학 서적 전문인 나남출판사에서 바둑만화인 무한묘수를 펴낸 것은 이례적이다. 열성 바둑팬인 조상호 회장의 강철수 화백에 대한 신뢰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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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사회과학 서적 전문인 '나남출판사'에서 바둑만화인 '무한묘수'를 펴낸 것은 이례적이다. 

열성 바둑팬인 조상호 회장의 강철수 화백에 대한 신뢰가 묻어난다.

 

 

수년째 한국기원 이사를 역임해오면서 바쁜 와중에도 바둑계의 대소사를 빠짐없이 챙기는 그는 본지와도 인연이 깊다. 몇 년간 한국기원이 사이버오로에 위탁했던 월간바둑이 2011년 보금자리인 한국기원으로 돌아오면서 잡지의 원활한 출간을 돕기 위해 편집위원회가 구성됐는데, 당시 편집위원장을 맡았던 이가 바로 조상호 회장이다. 아마5단 기력의 그는 매달 한 번씩 한국기원에서 편집위원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미리 도착해 필자와 바둑을 둘 만큼 바둑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취재를 간 날에도 당연히 바둑 한판이 빠질 수 없었다. 덕분에 수목원 중턱에 위치한 운치 있는 정자에서 산새 소리를 초읽기 삼아 수담을 펼치는 도락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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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중턱에 위치한 정자에서 깊은 산중에서나 들을 수 있다는 검은등 뻐꾸기 소리를 

초읽기 삼아 수담 망중한에 빠져든 조상호 회장과 필자.

인생 2막은 나무와 함께


30년 넘게 출판 외길을 달려오면서 출판 저널리즘을 꽃피워온 그가 수년 전부터 주의를 분산해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는 곳이 바로 나남수목원이다. 포천시 신북면에 자리한 16만여 평의 산자락이 8년여의 정성 어린 손길과 함께 번듯한 나남수목원으로 거듭나 올 후반 오픈을 앞두고 있다. 주중에는 출판사, 주말에는 수목원을 부지런히 오가며 휴일도 없이 땀과 정성을 쏟아부은 결심이다.

글과 책에 파묻혀 지내던 그가 어느 날 문득 수목원을 만들겠다고 작심한 건 아니다. 2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떠안게 된 파주 적성의 1만 5천여 평 임야를 비로 광릉수목원 자락에 3천여 평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서서히 나무의 멋과 향취에 빠져들었다. 나무를 심고 죽이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나무와의 동거에 익숙해질 무렵 파주 적성에 정성 들여 가꾼 농장을 반분(半分)하는 도로신설계획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나무를 옮겨 심을 넓은 임야를 확보하기 위해 경기북도의 산지를 주유(周遊)한 끝에 지금의 나남수목원 부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 8년 전 일이다.

수목원 입구에서부터 중턱을 향해 올라가며 조 회장은 눈에 보이는 나무나 화초마다 일일이 이름을 알려주는가 하면, 맞혀보라며 문제를 내기도 한다. 고향집 화단에서 눈에 익었던 눈썰미로 간혹 맞히기도 하지만 당연히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오랜 시간 나무와 부대끼다 보니 이제는 나무에도 감정이 있음을 저절로 인정하게 된다고 한다. 나무 역시 사람처럼 관심을 기울일수록 더욱 아름다워지고 무관심하거나 미워하면 점점 못나진다는 것 나무나 화초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이름을 알고 불러줘야 의미를 더하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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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렬로 늘어서 수목원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선비석' 뒤편 양지바른 곳에 수천그루의 반송이 자라고 있다. 

후일 우리 정신문화에 큰 족적을 남긴 실천지식인, 문화예술인을 모시는 아름다운 묘원으로 조성될 수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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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중턱 즈음 호젓한 호수를 끼고 위치한 정자 너머로 완공을 앞두고 있는 책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퇴직교수나 언론인 등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서고를 꾸며 

글을 읽고 집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예전에는 사시장철 푸른 소나무나 녹음이 우거진 상록수가 좋았지만 이제는 이파리를 다 떨구고 동천(冬天)을 향해 곧게 뻗은 나목(裸木)에 더 마음이 끌린다는 그가, 겉치레를 모두 떨치고 나면 그만큼 낮아진 산이 훨씬 포근하게 안긴다며 나목 예찬을 펼친다. 그래서 낙엽 지는 가을이 허허롭지 않고, 봄이 되어 줄기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황톳빛 생명의 기운은 곧 나올 새싹을 상상하는 충만함을 안겨준다고 하니 천생 산사람이 다 된 것 같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서 인간보다 훨씬 장수하는 나무야말로 지구의 주인이라며, 잠시 소풍 나온 지구별을 떠나는 날에도 후손들에게 남기고 갈 나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뿌듯하다는 조상호 회장.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대로 그는 점점 나무를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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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정자가 마치 연못 한가운데 자리 한 듯하다. 

수목원 중간 중간 조성된 연못이 산책길 사색의 깊이를 더해준다.


인터뷰 | 이세나 편집장

사진 | 이시용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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