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의병장의 꿈, 그리고 40년 ― 나남출판 30년에서 40년의 아름다운 사람들
작성일 : 22.08.09   조회수 : 552

‘언론 의병장의 꿈’을 꾸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나남출판 40년은 행복했다. 혼자서 꾸는 꿈은 꿈에 그치기도 하지만, 여럿이 같이 꿈꾸고 실천하면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새로운 경지의 없는 것을 찾아가는 고난의 대장정을 견뎌내야 하는 고통은 말할 것도 없지만, 넘어질 때마다 흔들릴 때마다 곁에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응원이 다잡아 주었다.

 

2019년 5월, 나남출판 40년이 되었다. 기념식이 열린 10년이 되어가는 나남수목원은 철쭉이 만개하고 목련의 꽃그늘이 넓은 잔디광장의 푸르름과 짝하면서 신록의 숲속에서 평화로웠다. 이를 기념하는 마음으로 〈숲에 산다 ― 세상 가장 큰 책 나남수목원〉을 출판했다. 2017년부터 2년 동안 〈한국일보〉 ‘삶과 문화’ 칼럼과 반년 동안의 〈문화일보〉 ‘살며 생각하며’ 칼럼이 중심을 이루었다. 신문사 원고청탁의 강권이 없었다면 그동안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올랐던 단상斷想들이 언어로 정제되지 못하고 그냥 숲속에 묻혀 버렸을 것이기에 더욱 소중했다.

 

세상에 나이가 들면서 더 고귀해 지는 것은 나무밖에 없다. 나무처럼 늙고 싶었다. 나무는 긴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며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지면 새봄에 다시 싹을 내어 새로운 수형을 만들고, 폭풍우에 뿌리가 흔들릴 때마다 미지의 땅속에 더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인고忍苦의 계절을 그냥 지나가는 예정된 소요처럼 늠름하게 견뎌낸다. 나무처럼 아름답게 늙고 싶다면 이 초월과 해탈과 절대고독의 긴 여정을 나무처럼 살아야 한다. 언제인가 어느 나무 밑에 묻힐 때까지 이 길을 가야 한다. 노추老醜의 강을 건너뛰며 세상 가장 큰 책이 될 이 숲에 허허롭게 사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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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의 불화를 용광로처럼 승화시킨 출판사는 불혹의 나이라는 큰 매듭을 지으며 흔들림 없는 반석에 성채를 틀고 있는 듯했다. 19회 지훈상 시상식도 함께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마음속으로 70 고희古稀 잔치를 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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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패가 드넓은 수목원을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

 

국악과 교수였던 여동생(혜영) 제자들의 사물놀이패가 북 치고 장구 치고 풍악을 울리며 드넓은 수목원을 돌며 지신地神 밟기를 한다. 원시의 숲이 잠시 들썩인다. 뒤늦게 핀 산벚꽃 꽃잎이 추임새를 넣듯 눈처럼 분분히 날리고, 힘찬 물줄기로 용솟음치던 분수는 이에 추임새를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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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생근 선생, 아내, 김중배 대기자, 염재호 총장과 함께.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을 진즉에 알았다며 먼 곳까지 와서 내 일처럼 좋아하는 기념축사를 전하는 김중배 대기자, 오생근 선배, 염재호 고려대 총장의 목소리에 약간의 설레임이 묻어 있는 것처럼 울린다. 고마울 뿐이다. 김 선배는 지금의 내 나이 때인 나남출판 20주년 행사에서도 내게 용기를 주는 따듯한 격려의 말씀이 프레스센터를 꽉 채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나 지금이나 막냇삼촌 또는 큰형 같은 육친의 정이 진하게 묻어 있다.

 

오 선배는 지근거리에서 출판사의 성장을 지켜보아선지 40년 나남출판과 아우의 성취를 회고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이 자꾸 끊긴다. 김형국 교수가 같은 대학에서 정년을 했는데 몰랐다며 좋은 분이 곁에 있었다고 나를 부러워했다.

 

염 총장은 1988년 〈사회비평〉편집위원으로 만났다. 항상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뿜고 선배의 답답한 사고방식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려 애쓰는 자랑스러운 후배이다. 축사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나에게 ‘형님’이라는 말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총장 취임하고 그이와 둘이서 한나절 자유분방하게 고려대의 꿈을 이야기했던 아련하게 각인되었던 안암동의 짧은 봄날이 자꾸 소환되었다. 그이는 〈개척하는 지성〉의 저자이자 그가 곧 온화하고 올곧은 개척하는 지성의 현신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승철 주필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난다. 선의로 시작한 연분이 싹을 트거나 그 사이 10년, 20년 각자의 길에서 성숙한 길을 열심히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남출판사 40년 성취의 고지를 향한 10여 년 동안 큰 획을 그으며 동행한 고승철 ‘주필 겸 사장’과의 행복한 시간들을 여기에 기록한다.

 

그이와의 인연은 우연하게 시작되었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되고, 필연이 또 반복되면 운명이 된다고 했던가. 사람이 서로 엮이며 사는 세상이 사회이고, 회사도 사람과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인적 관계망의 중심인 출판사는 더욱 그러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속언은 착한 관계였을 때 더욱 빛난다.

 

출판사를 시작하고 10년이 채 되지 않았던 33년 전인 1989년 가을 어느날에, 〈경향신문〉경제부 고승철 기자가 서초동 교대 앞 출판사를 찾아와 〈학자와 부총리〉원고를 내밀었다. 조순趙淳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1988년 12월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로 부임하자 경제기획원에 출입하던 고 기자가 부총리의 행적을 저널리스트 시각으로 집필한 것이다.

 

나남출판사가 언론학 전문출판사로 이름을 얻어 갈 무렵이었다. 이론적인 신문방송학과 교과서뿐만 아니고, 김중배 〈동아일보〉논설위원의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칼럼집 등 언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출판하던 무렵이기도 했다.

 

초면인 젊은 기자의 열정에 찬 점잖은 원고를 다듬어 출판을 준비하던 중에 의외의 방문객을 만난다. 부총리 비서실장이었다. 거대한 경제학과 동창회에서 이 책이 부총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의견을 모아 출판을 막기로 했는데, 고 기자를 만날 수 없다며 출판사를 찾았다 했다. 출판사가 돈을 벌려고 책을 내는 것일 텐데, 그 책을 자기가 모두 샀다 치고 아예 출판하지 말라며 거액을 내밀었다. 악마의 유혹은 이제는 재개발로 사라진 잠실의 작은 시영아파트 한 채를 살 만한 금액이었다. “뭐 이런 사람이 있느냐”고 내쳤고, 고급공무원인 그이도 “별난 출판사 사장도 다 있네” 하고 계면쩍은 표정으로 돌아섰다.

 

이제는 조순 교수의 애제자인 정운찬 교수가 나서서 고 기자의 원고라도 미리 볼 수 없겠느냐는 부탁에는 “무슨 사전검열이냐”고 말을 막았다. 처음 겪는 관계망의 끈적거리는 거미줄들이 불편했다. 지난해 창간한 〈사회비평〉에 글도 써준 정 교수에게 미안했지만, 젊은 기자의 첫 번째 책 출간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살아있는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기보다는 세상은 다 이런 거라는 막연한 처세술로 그이의 기를 꺾는 비겁한 나를 보이는 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1989년 연말에 〈학자와 부총리〉는 거미줄로 그네 타는 것 같은 어떤 권력의 벽을 뚫고 그렇게 늠름하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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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이 지나 2000년 가을 〈동아일보〉 경제부장이 된 고승철 기자를 다시 만났다. 우연히 〈동아일보〉편집국에 들렀다가 외부인사 영입으로 몇 달간 시끄러웠던 그 자리에 작은 거인처럼 우뚝 선 그가 너무 반가웠다.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난다는 말이 틀림없었다. 그동안 〈경향신문〉 파리특파원으로 4년 가까이 체류하며 넓은 세상의 안목과 고급문화의 세례를 받고, 효성그룹의 임원으로 실물경제의 현장을 누비고, 〈한국경제신문〉 산업 2부장으로 경제데스크 기초를 닦았으니 〈동아일보〉로서는 용인술을 잘 쓴 셈이다.

 

2007년에는 〈동아일보〉출판국장을 맡았다며 그간의 안부를 전할 겸해서 파주 출판도시로 옮긴 출판사를 찾아왔다. 월간잡지 출판이 주종이지만, 단행본 출판도 많다며 조언을 구했다. 국장이 할 일이란 좋은 저자를 만나게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넌지시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은 출판실무를 익히기 위해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두세 달 ‘한겨레 출판교실’ 야간강습을 받았다는 말도 지나가듯 꺼냈다. 고 국장은 맡은 일에 열정을 갖고 성실하게 대처하는 그런 인품이었다.

 

고 국장은 정년 퇴직보다 몇 년 일찍 사직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언론인 출신 소설가 이병주를 따라 작가의 길을 걸었다. 〈은빛까마귀〉, 〈개마고원〉에 이어 그의 대표작 〈소설 서재필〉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혼을 불태웠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은 언론인이 공들여 쓴 한국언론사를 심도 있게 살필 수 있는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즈음 장편소설들을 출간하느라 출판사를 자주 출입했다. 마침 사법고시에 합격한 아들이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공부 중이어서 겸사겸사해서 이쪽 동네 나들이가 잦았다.

 

2008년 5월에는 스무 살도 안 된 출판사를 이 시대의 큰바위 얼굴로 웅비雄飛하는 데 17년 동안 3백만 부 넘는 밀리언셀러로 반석 위에 올려놓은 〈김약국의 딸들〉, 대하장편소설 〈토지〉(21권)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갑자기 타계하셨다. 7월에는 출판사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때부터 집안의 형님처럼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사랑을 베풀어 주던 마음속으로 의지하던 대들보인 이청준 작가도 돌아가셨다.

 

항상 귀한 사람들을 먼저 부르신다는 하늘의 뜻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초대받지 않은 상주喪主의 마음으로 두 분 선생들의 죽음을 갈무리했는데도 가슴 한구석이 뚫린 허전한 마음을 억누르고 사는 일상이 편하지 않았다. 2011년 6월에는 아버지를 잃은 자리에 25년간 모셨던 김준엽 고려대 총장님을 잃었다. 김 총장님은 나에게는 역사의 신을 신봉하는 성채城砦 자체였다. 또 하나의 장정을 같이한 역정을 회고하며 슬픔을 다독이는 말상대로서 작가가 된 고승철 국장이 곁에서 마음을 많이 써주었다.

 

회갑 주변에는 젊은 날의 고통과 핍박을 헤쳐 나오기 위한 우회로로 선택한 출판사가 평생직업이 될 것 같은 조짐이 보였다. 개인의 의지로 시작한 출판사가 이제는 공론장公論場에서 의도했던 출판언론의 공적 의무도 함께해야 한다는 무언의 의무감도 도드라졌다. 그리고 포천 신북에 20만 평의 수목원을 ‘세상 가장 큰 책’으로 만들려는 필생의 꿈을 안고 삽질을 시작했다. 오랜 염원인 민주화의 격류가 승리한 세상에 동참하자는 권력의 유혹을 떨쳐내고 본업인 출판사를 지켜내고 싶은 마음에 또 하나의 해방구로 언제 끝날지도 모를 고통의 축제를 자청한 것인지도 모른다.

 

꿈꾸는 나무들, 수목원의 탄생에 대해서는 나남출판 35주년 기념으로 2015년 출판한 〈나무심는 마음 ― 아름다운 숲 나남수목원〉에 담았다. 박석무 · 김민환 선생의 초대로 2012년부터 1년 반 동안 집필한 ‘다산칼럼’과 2014년 반년 동안의 대구 〈매일신문〉‘계산칼럼’ 원고가 밑받침이 되었다. 논객으로 초대받았으니 그렇고 그런 정치현안의 글을 바라는 것 같았다. 문화의 향기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오래가야 한다는 출판장이의 작은 고집으로 유쾌한 배반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창업한 지 30년이 넘는 출판사의 외로운 대장정에 같이할 사람이 있었으면 싶었다. 큰바위 얼굴 같던 선생들이 한둘씩 별나라로 떠나자 내가 백척간두百尺竿頭 맨 앞에 서게 된 절대고독에 동지同志를 찾았다. 이제는 작가의 길을 걷는 고승철 국장에게 신문사에서 경험하지 못했을 ‘주필’ 직함을 내세워 무도회의 초대를 권유했다. 그는 문화쿠데타를 도모하자는 창의문은 외치지 않았지만 나남출판사라는 양산박梁山泊의 호걸로 입성했다. 일 년 동안 ‘주필 겸 부사장’으로 말을 맞추고 발을 맞춰 보긴 했지만 사나이의 뜨거운 용암냄새라도 서로 맡아보려면 극적 전환이 필요할 것 같아 일주일의 무모한 여행길에 나섰다. 2013년 설날, 누구도 쉽게 찾지 않는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바이칼을 찾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둘이 몸을 실었다. 우리는 무엇을 찾았던가. 그 많은 자작나무 숲의 풍광이 스치고 생명의 시원始原을 경험했지만 사실은 바로 동행할 사람을 찾은 셈이었다.

 

기차가 삶을 느리게 살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벌써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작나무 우거진 태고의 음향 속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들은 시베리아의 달빛에 젓기에 충분했다. 23년 전인 1989년 그이의 마산고 선배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교수와의 유럽여행 때 교감이 일어난 독일 뮌헨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넘어가던 열차여행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다. 무슨 인연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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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에서 고승철 주필과 태고의 호연지기를 담았다.

 

3일간의 횡단열차가 닿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까지는 8시간 눈길을 버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바이칼의 장엄함과 생명력을 경배해야 할 일이다. 끝 간 데 없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자동차로 내달리며 태고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슴 가득 담는다. 바이칼의 마지막 밤에는 자작나무 숲에 쏟아 붓는 별들의 폭포를 보며 우리는 두 손을 맞잡고 우주의 신비를 겸허하게 세례받아야 했다.

 

2013년 3월에 한국개발원KDI이 기획한 “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편찬위원회의 〈코리안 미러클〉을 출간했다.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한국경제의 기적을 만든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한 고위경제관료들의 통화개혁, 8 · 3조치, 수출정책, 과학기술정책 비화를 묶었다.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 한국은행을 출입한 오랜 경제부 기자 이력의 고승철 주필이 여느 기자와는 달리 축적한 적선積善의 결과였지 싶다. 진념, 강봉균, 윤증현 전 부총리, 윤대희 전 경제수석 등 편찬위원 여러분의 진실된 도움이 컸다. 고 주필과 경제부처에 함께 출입한 MBC 출신의 경제학박사 홍은주 교수가 주 집필자였던 점도 행운이었다.

 

이 장기 시리즈는 10년 동안 계속되었다. 2014년 물가안정, 기업 및 은행자율, 시장개방 정책을 다룬 〈코리안 미러클〉② “도전과 비상”, 2015년 〈코리안 미러클〉 ③ “숨은 기적들”로 ‘중화학공업, 지축을 흔들다’, ‘농촌 근대화 프로젝트, 새마을운동’, ‘숲의 역사, 새로 쓰다’ 3권이 출판되고, 2016년 〈코리안 미러클〉 ④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2019년 〈코리안 미러클〉 ⑤ “한국의 사회보험, 그 험난한 역정과 모험”과 “혁신의 벤처생태계 구축” 2권, 2020년 〈코리안 미러클〉 ⑥ “한국의 경제질서를 바꾼 개혁, 금융실명제”, 2022년 〈코리안 미러클〉 ⑦ “정보화혁명, 정책에 길을 묻다”가 출판되었다. 이 시리즈 9권은 대학의 한국경제사 교과서가 되었고, 경제계에도 큰 이슈가 되었다. 일부는 외국에서 영문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2014년 그이가 ‘주필 겸 사장’이 되자, 창업자이자 사장이던 나는 35년 만에 회장으로 자체 승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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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으로 치닫는 마차의 한 축이 경제관료라면, 다른 한 축은 이를 실천한 대기업일 수밖에 없다. 〈코리안 미러클〉의 출판 중에 대기업 창업주의 기록들을 출판하려고 기획했다. 이미 1996년 한양조씨 문중 일이라며 대한항공 창업자 조중훈 회장의 회고록 〈내가 걸어온 길〉출간의 기억도 새로웠다. 외국 유학중이던 딸아이는 아빠찬스로 몇 번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도 받는 듯했다.

 

서울대 권태준 교수는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나남, 2006)에서 자본가와 기업가들은 자율적 시장능력과 자본동원능력에서 정부가 계획 추진한 경제개발 사업의 규모에 비추어 보잘 것이 없었으므로, 성공적 산업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중상적重商的 보조자’로 개발독재체제의 명령에 따르는 부관副官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정권과의 개인적 연줄자본주의식으로 성장했으나 산업화의 첨병尖兵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업적만으로도 창업 1세대의 개인적 저돌성을 높이 평가해서 ‘창업자 시리즈’를 기획했다.

 

2014년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을 우연한 계기로 출판했다. 몇 해 전 아들이 미국 코넬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시간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던 중간에 삼성에 일 년 반 근무했던 적이 있었다. 연수중에 1986년 출간된 한자투성이인 이 책을 읽느라 고생하던 모습을 보았다. 28년 만에 한 세대의 간극을 뛰어넘기 위해 신세대에 맞게 세로쓰기를 가로쓰기로 바꾸고 한글화하고(한자는 괄호 넣기) 글자도 키우고 사진도 컬러로 보완하여 재출간했다. 법조출입기자로 이름을 날리며 2006년 〈미국법, 오해와 이해〉를 출판했고, 외국유학 후 삼성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이수형 당시 전무가 〈오프 더 레코드〉를 출판할 무렵이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호암재단에서도 반겼으며 이재용 당시 삼성 부회장에게도 전달했다.

 

2015년에는 고 주필이 신문사 동료였던 허영섭 논설의원에게 집필을 의뢰해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 평전인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20세기의 신화 정주영에게서 찾는 한국의 미래〉를 출판했다. 인생 후반에 대통령에 출마하는 외도로 창업자의 열정이 바래기는 했지만 이 책이 정주영 신화를 기록한 정본이기를 희망했다.

 

2016년에는 1세대 벤처사업가인 미래산업 창업자 정문술 회장의 회고록 〈나는 미래를 창조한다〉를 출판했다. 국내 최초의 ‘벤처 대부’ 정 회장은 회사 경영권을 직원들에게 물려주는 아름다운 경영의 선례를 남겼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515억 원의 사재를 기부했다. 같은 해에 정밀공작기계 한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을 이룬 화천그룹 창업자 권승관 회장의 자서전 〈기계와 함께 걸어온 외길〉을 출판했다. 전남 광주에서 해방 전후 일본인 공장을 인수하는 시대의 증언과, 6 · 25 전쟁에서 공장을 지켜내는 창업주의 투쟁이 어느 기록에서도 볼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8년 가을, 수 년 동안 해마다 참여하던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한강변에서 연습하던 고승철 주필이 자전거와 충돌로 갑자기 주저앉았다. 건강 이상이 생겼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큰일은 아니었으나 출판사를 쉬기로 했다. 7년 넘는 나와 함께한 출판 장정長征의 기념으로 〈고승철 시집 · 춘추전국시대〉를 우정의 선물로 출판했다. 고 주필은 이제 언론인, 소설가, 시인으로의 성좌를 갖게 되었다. 몸을 추스르면 장편소설 집필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은 3년 후 장편소설 〈파피루스의 비밀〉로 결실을 맺었다.

 

2020년에는 소공동 롯데호텔부터 잠실 롯데월드, 123층 타워까지 설계에 참여하면서 신격호 회장을 40년 넘게 보좌한 일본 건축가 오쿠노 쇼의 〈신격호의 도전과 꿈〉을 출판했다. 국배판의 큰 책으로 설계도와 숱한 시안들과 건축사진이 많고, 신 회장의 꿈을 공간으로 현실화한 용기와 도전이 생생한 목소리로 기록되었다. 이 책을 펴낸 롯데 황각규 부회장은 창업자의 상상력과 열정이 오롯이 담긴 이 책이 건축, 도시개발, 디자인 분야 전문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가슴에 큰 울림이 일기를 소망했다. 일어판도 동경에서 동시에 출판되었다.

 

2021년에는 출판사 일선을 떠나 창작활동에 열중하던 고승철 작가에게 도움을 받아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 ― 한계를 넘어 더 큰 내일로〉를 출판했다. 신 회장 탄신 100주년 기념이었다. 사업을 크게 일으키기 전 자료가 열악한 신 회장의 일본 동경의 어려운 청년시절의 묘사는 그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병주의 소설 〈관부연락선〉에 비견되는 탄탄한 구성과 없는 것을 찾는 젊은이의 지적 낭만이 어우러졌다.

 

이 책에서 1970년대 초 소공동 롯데호텔의 사업규모가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와 맞먹는 대규모 투자였음을 알았고, 롯데가 오래 준비한 제철 투자사업을 포철 박태준 회장에게 흔쾌히 넘겨주었고, 재일교포 신 회장이 한국 국적을 계속 유지하며 일본에서 사업을 성공시킨 결기에 고개를 숙였다. 잠실벌판에 세운 평생의 소망이자 집념의 결정체인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오늘도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구름을 뚫고 빛나고 있다.

 

고승철 작가는 몇 년 동안 수목원 조성에 꽃과 나무를 나와 같이 심으며 땀을 쏟았던 애정으로 준비 중인 반송밭 수목장에 존경받는 언론인을 모셨으면 좋겠다는 큰 뜻을 전해왔다.

 

2022년에는 고승철 작가가 집필한 신한은행 창업자 이희건 회장의 회고록이 출판되었다. 신한은행 창립 40주년의 기념행사의 일환이었다. 롯데 신격호 창업자가 일본 동경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비슷한 시기 신한은행 창업자 이희건 회장은 재일교포 본거지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이 된 쓰루하시의 빅브라더였다. 어려운 시절 교포들의 권익향상과 자본조달을 위한 오사카흥은 설립을 주도한 리더십이 빛나고, 조국이 경제개발을 시작하자 모국투자단을 이끌고 신한은행 창립에 이르는 애국심에는 머리가 숙여졌다.

 

우리가 가난하던 그때는 세계로 열린 통로는 재일동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재일동포들의 성금으로 공사관, 대사관을 건축할 수 있었으며, 런던올림픽, 동경올림픽 지원이 그러했고, 올림픽공원에 세워진 석비石碑에 기록된 대로 서울올림픽 성금은 541억에 달했다. 그리고 이희건 회장은 12년 전 돌아가시면서 신한은행 보유지분 전체 400억 원을 출연해 ‘한일교류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또 백제인이 오사카를 찾은 역사를 해마다 재현하는 ‘사천왕사 왔소’ 행사를 주도했다. 이 책에 실린 이 회장의 손녀가 안타까워하듯이 우리는 이분들의 피땀 어린 헌신을 너무 인색하게 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송호근 교수 또는 작가

 

송호근 교수와의 아름다운 만남은 〈지식사회학〉의 출판만이 아니라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에 창간한 〈사회비평〉편집위원과 발행인의 틀을 넘어 용광로 같은 열정의 격론으로 40대를 같이했다. 춘천 가는 막차시간을 몇 번씩 확인하며 없는 것을 찾는 젊은이의 열정 그대로 수많은 얘기를 나눴던 마지막 젊음의 그때가 벌써 그립다. 출판사를 차리지 않았다면 이런 뜨거운 지성의 활화산을 품은 사나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송 교수와의 우정 어린 운명 같은 동행은 평생을 간다.

 

그가 모교로 가기 전 춘천 한림대 시절에는 박경리 선생과 친한 시인인 장모님 덕택으로 원주 나들이가 잦아진다. 내가 1993년 〈김약국의 딸들〉, 2002년 〈토지〉출판을 하는 데에 그가 박경리 선생에게 지렛대 역할을 한 것도 유쾌한 후일담으로 공유하고 있다. 문학의 그리움으로 〈토지>의 큰 품에서 이슬비에 옷 젖듯 소설가의 내공을 쌓은 송 교수는 원로 사회학자의 영광인 서울대 석좌교수 퇴임 전인 2017년 최초의 장편소설 〈강화도 ― 심행일기〉, 2018년 〈다시 빛 속으로 ― 김사량을 찾아서〉를 출간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리운 것은 그리워해야 한다. 그 젊은 날의 그리움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만큼 크고 귀하게 이렇게 소설이라는 훌륭한 틀에 안겨 우리에게 전달된다. 2022년 초여름에는 몇 년 동안 숙성시킨 그이의 첫 창작집인 ‘꽃 연작소설’ 상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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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와의 아름다운 만남.

 

비판적 지식인인 송 교수에게 이런 따듯한 가슴이 있었다. 1998년 1월 말, 며칠 밤을 새운 초췌한 모습으로 1천 장 넘는 원고를 가져왔다. 처음 겪는 외환위기의 폭풍 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국가 부도의 위험이 도사린 활화산의 언저리에서 숨을 죽이고, 한 달 동안 밤잠을 설치며 써 내려간 ‘IMF 사태를 겪는 한 지식인의 변명’이었다. 땀 흘려 쌓아왔던 보람이 정체불명의 회오리바람에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암담한 상실감과, 한 치 앞을 헤아릴 수 없는 무력감에 치를 떨던 시간들이었다. 송 교수가 그렇게 반갑고 고마웠다. 선택의 기회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 부도라는 총체적 파산선고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외로운 혼돈 속에 동지를 만난 것이다. 의롭고 성실한 사회과학자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국가 침몰 사이렌에 무장해제 당한 현실의 객관적 인식과,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또 하나의 미국시장으로 예속되는 절절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뒤흔들렸다. 앞이 캄캄한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같이 한 걸음 더 내딛기로 했다. 책 제목은 〈또 하나의 기적을 향한 짧은 시련〉으로 출판했다.

 

이런 의제를 설정하는 출판은 훌륭한 언론에 다름 아니다. 지식인은 언관言官과 사관史官으로서 이럴 때 횃불을 들고 앞길을 밝히며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적을 갈구하는 이 시련은 짧지 않게 오랜 동안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안식년을 가기 위해 쌓아둔 짐 보따리 곁에서 토해낸 사자후獅子吼는 그때 한 달도 되지 않아 5천 부가 팔렸다. 그 인세로 IMF 사태 후 두 배나 치솟은 안식년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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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대한 노동사회학자 송 교수의 열정은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라는 화두로 4차 산업혁명이 도둑처럼 덮치고 있는 산업현장을 보듬는다. 2017년 출판한 〈가 보지 않은 길 ―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가 그 시작이다. 울산: 한국의 운명을 쥐다, 현대차의 성장유전자, 기술선도: 현대차 생산방식, 풍요한 노동자, 민주노조의 무한질주, 각축하는 현장, 다양성의 시대, 함대가 간다, 신문명의 전사, 위대한 변신 등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고도화되는 기술과 단순화되는 노동의 분리를 생각하며 가 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제조업인 현대차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2018년에는 〈혁신의 용광로 ― 벅찬 미래를 달구는 포스코 스토리〉를 출판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힘과 지혜, 실천력을 포스코 작업현장에서 목격한다. 철강산업은 최첨단 기술과 빅데이터, 정보화, AI가 융합되고 실행되는 정보 · 지식 노동자들의 현장이다. 생산성 동맹의 조직자본은 학습, 토론, 혁신의 연합체다. 그곳에서 협력경쟁이 용광로의 뜨거운 쇳물로 뿜어져 나온다. 그들은 직장에 대한 헌신과 몰입을 넘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공유와 공감의 시민성 자질이 충만하다고 분석했다. 이 책은 3년이 넘어서며 5만 부를 돌파하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2019년 포스텍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송 교수는 ‘융합문명연구원’을 만들고, 〈기업시민의 길 ― 되기와 만들기〉를 집필한다. 기업시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 공유가치’ 개념을 넘어 국가와 시민사회의 요청에 응답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개념이자 정체성 변환개념이다. 포스코의 슬로건을 ‘포스코와 더불어’로, 경영이념을 ‘기업시민’으로 설정한 것은 시대사적 의미를 갖는다. 2020년에 기업시민의 현재와 미래인〈기업시민, 미래경영을 그리다〉를, 2021년에는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ESG 시대를 앞서가는 기업시민 스토리인 〈기업시민, 미래경영의 길이 되다〉를 기획출판하여 한국 경제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20여 년 전 국가 부도의 공포로 엄습했던 IMF 사태 때 〈또 하나의 기적을 향한 짧은 시련〉을 출판해 한국사회에 안타까움과 희망을 토로했던 그의 의지가 이제 창공을 가르는 대붕大鵬의 날개로 비상한 것에 틀림없다.

 

2020년 설날 무렵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령처럼 전세계를 뒤덮는다. 처음 겪는 공포에 떠는 우리들을 그냥 방관할 사회학자 송 교수가 아니었다. 포스텍 석좌교수인 그는 젊은 학자들을 담금질하여 〈코로나ing: 우리는 어떤 뉴딜이 필요한가?〉를 출판하여 팬데믹이 강요한 문명적 전환의 큰 그림을 그렸다. 이제까지 성장일변도의 각축전과 풍요를 향한 무한의 질주로 땅을 착취했던 문명의 그늘을 지적했다. 공유지의 비극인 기후재앙과 바이러스는 일란성 쌍생아이기 때문이다. 뉴노멀로 디지털 언택트 문화의 확산, 탈세계화, 자원활용화의 제동, 위험의 불평등, 거대정보의 요청 등 문명사의 각성을 들었다. 우리는 항상 현장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한 발짝 미래의 풍향을 읽어내려는 창조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인과 함께하는 행복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송호근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2021년 설날에는 17년간 〈중앙일보〉에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던 ‘송호근 칼럼’을 마치면서 〈송호근의 시대진단/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을 출판했다. 촛불은 왜 격류가 되었나, 문재인 정권의 정신구조, 사약 ― 엎질러지다, 친북과 반일의 합주, 코로나와 보낸 지옥의 시간들, 정의의 강은 천천히 흐른다가 주요 내용이다. 필자는 대학강의와 사회참여, 문학창작의 바쁜 시간의 허리를 잘라낸 데드라인의 피를 토하는 결정체였겠지만, 보름 만에 한 번씩 새벽마다 송호근 칼럼의 죽비소리 같은 신선한 세례를 받았던 감동의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언론의병장의 꿈, 25~47p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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