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궁예성터의 천년 고독
작성일 : 18.07.30   조회수 : 450

철원 궁예성터의 천년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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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일보, 2018.7.27.


수목원 가는 길에서 일천백여 년 전의 궁예(弓裔)가 걷던 많은 흔적과 만난다. 새 시대를 꿈꾸며 변혁의 의지를 불태운 풍운아의 자취여서인지 전설이 되어 바람결에 실려 온다. 10년 전 포천시 신북면에 20만 평의 수목원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파주 출판사에서 임진강을 끼고 잘 뚫린 길을 따라 간다. 교통량이 적은 상쾌한 길이다. 나무처럼 살기 위해 꿈꾸고 때로는 고통의 축제 속에 모양을 갖추어가는 수목원 디자인 설계의 8할은 수백 번 오고간 이 길 위에서 숙성되었을 것이다. 

 

  국토분단 70년은 대륙을 말 달리던 우리를 섬나라에 갇혀 살게 했다. 섬은 자동차나 기차로 외국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강이 넓은 바다로 나가는 반도의 중심이 접적지역인 블랙홀로 변했다.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로 더 남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공동체보다 자기의 생명과 재산 보전만을 생각한다. 입으로는 곧잘 통일을 노래하지만 머릿속에는 1백만 교포가 사는 미국 LA보다 더 먼 곳으로 각인되어 있는지 모른다. 분단의 광기(狂氣)가 걷히고 평화와 번영의 새 역사가 시작하는 찬란한 빛인 남북정상 회담이 열린 지 석 달이 지났다. 

 

  교하(交河)에서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에 이르는 바다 같은 강의 모습에 가슴이 트인다. 문산을 지나면 임진왜란 때 임진강을 건너 피란 가던 못난 선조가 한밤중에 불을 밝히려 정자를 뜯어냈다는 이율곡의 화석정을 지난다. 연천 고량포 주변에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무덤 표지판도 스친다. 후백제 견훤의 지배를 벗어나려 왕건에 나라를 바친 그는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임진강 북쪽에 묻혔다. 

 

  파주 적성의 임진강변 어유지(魚游池)리에는 수도 철원에서 개성을 가던 궁예가 마차를 내려 배로 갈아탔던 곳이라는 설화도 있다. 주상절리의 한탄강이 임진강과 만나는 곳이다. 교하를 거쳐 강화도를 끼고 서해로 나가 예성강을 거슬러 개성으로 입성하는 궁예왕의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한다. 수목원 가는 길은 궁예가 걷던 길의 어느 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에 자주 빠져들면서 몇 번 그를 스친 것 같은 기시감도 들기 시작했다. 궁예의 그림자 한 자락이라도 밟아 보려는 1천 년의 시간여행은 철원 현장을 찾아 발품을 파는 일이 먼저였다. 


  5년 전 한탄강을 따라 오르며 처음 철원을 찾기 시작했다. 미군 정보부대가 철수하고 일반에게 개방된 소이산에서 바라본 일망무제의 철원평야는 장관이었다. 인간이 만든 방책선이나 철조망은 짐짓 모른 체하고 건너뛰기로 했다. 이북의 평강고원으로 짐작되는 곳까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푸른 지평선을 본 것은 황홀한 첫 경험이었다. 27만 년 전 화산폭발로 용암이 만든 드넓은 평야는 대제국이 웅자를 틀만한 도읍지로 크게 다가왔다. 왕국 건설의 물적 토대는 드넓은 곡창지대의 생산력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로명 사업으로 철원의 큰길 이름을 ‘태봉로’로 정한 후손들의 가슴 깊은 곳에 궁예를 기리는 뜻으로도 천년의 신비를 다 알아챌 수는 없다.

 

  민간인 통제구역을 출입하는 절차를 검문하는 초병(哨兵)의 앳된 얼굴이 사랑스럽다.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벼의 사열을 받으며 철원평야를 달린다. 경원선의 마지막 역인 옛 모습의 월정역을 잠시 둘러본다. 군사분계선이 코앞이다. 작은 모노레일로 철원평화전망대에 오르면 바로 발아래 태봉국 도성지인 궁예성터가 천년의 고독으로 반긴다. 전망대 안에는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들어앉은 성터의 위치를 커다란 지도 위에 선명하게 표시하여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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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성터가 DMZ 안에 걸쳐 있다. 중앙 노란색은 군사분계선, 빨간색은 북방한계선,

파란색은 남방한계선, 가로지르는 흰 색은 경원선 철로의 흔적이다. 


  토석 혼축방식의 외성이 12.5km이다. 내성 7.7km, 궁성 1.5km이다. 450년 후 정도전이 우람하게 돌로 설계한 조선의 한양도성이 동대문에서 서대문까지가 5km가 되지 않으며 전체가 17km인 점을 비교하면 당시 궁예의 위세가 얼마나 엄청났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갑자기 캄보디아의 밀림 속에서 발굴된 앙코르와트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이 스치기도 한다.    

 

  901년 평양에서 충주 이남까지 한반도의 중앙을 장악한 궁예는 개성에서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한 고려를 건국한다. 청주에서 1천 호 7천 명을 이주시키는 등 준비를 마치고 905년 철원으로 천도한다. 해양상인인 개성 호족들과 결별하고 서로 뜻을 함께하여 편히 사는 세상을 꿈꾸는 태봉국(泰封國)의 우렁찬 첫걸음이었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내쳐진 신라왕자의 혹독한 성장과정도 늠름하게 이겨낸 궁예도 호족연합세력의 덫에 걸려 20년이 되지 않는 새 나라의 꿈을 접어야 했다. 918년 20년간 총애하던 부하장수 왕건의 신군부 쿠데타로 궁예의 미륵불 이상향은 미완(未完)의 혁명(革命)으로 깊은 잠에 빠진다. 

 

  모든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궁예의 역사는 왕건의 고려에 의하여 철저히 묻힌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개성의 기득권자를 벗어나 천도할 곳으로 남쪽 계룡산까지 찾았다는데 궁예의 철원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뼛속까지 고려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그의 한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궁예는 더욱 잊혀졌다. 또 5백 년이 지나고 일제 강점기가 되자, 거대한 철원평야의 쌀에 눈독을 들인 일제는 이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기 위해 1914년 원산항까지 철도를 부설한다. 호남평야의 쌀을 착취하여 일본으로 실어내던 군산의 일제척식회사인 불이흥업이 주도하여 전국에서 1,500호 1만명 넘게 강제 이주시키는 등 철원을 당시 서울인구 1/3인 8만 명의 대규모 식량생산기지로 만든다. 궁예의 비원(悲願)은 그때에도 살아 번득였는지 일제는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명산 봉우리에 쇠못을 박듯이 대평원의 경원선 철로로 궁예성터를 가로지르는 만행을 자행한다. 경원선 복원으로 기차로 유럽 가는 부푼 꿈에 들떠 있는 위정자들이 궁예성터를 비껴가는 철로의 구상은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원재길 소설가의 신간 장편소설 〈궁예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그를 수목원에 초대하여 하룻밤을 같이 했다. 미친 세월에 거대한 해일(海溢)을 일으켜 세상을 세상답게 만들려 온몸을 바치고도 어둠의 동굴에 갇힌 궁예의 주술을 풀어내 같이 춤추는 듯 했다. 혁명의 성채였을 물위에 떠 있는 연약한 연꽃 모양의 화개산(花開山)에 안긴 도피안사(到彼岸寺)의 도선(道詵)국사도 흥겨워했음에 틀림없다. 속세를 넘어 지혜의 세계인 이상세계에 도달하고픈 절집의 대적광전(大寂光殿) 앞에는 산세를 비보(裨補)하는 삼층석탑과 지금도 6백년이 넘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그 의미를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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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도피안사. 

 

  이곳도 한국전쟁의 격전지로 참혹한 상처를 입었다. 불에 탔다가 복원된 대법당에 모셔진 갸름한 달걀형의 얼굴에 양손을 거머쥔 지권인(智拳印)을 한 철로비로자나불상(865년, 국보 63호)이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낸다. 청소년기에 수십 번은 더 찾았던 고향인 남쪽 끝 장흥 보림사(寶林寺)의 철불(858년, 국보 117호)보다 10년 가까이 늦게 모셔진 이 불상을 여기서 다시 알현하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혁명의 불씨를 간직한 시대정신은 초원의 들불처럼 반도를 종단했나 보다. 철불의 얼굴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변혁의 의지를 키우던 호족들의 이상형이면서 그들의 자화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사적 전기를 맞은 남북 교류의 첫 성과는 철원 궁예성터의 복원이었으면 싶다. 이념다툼의 전쟁으로 분단이 길다보니 상징이 될 만한 남북의 정신적 공통분모가 많지 않은 아쉬움 때문이다. 국토의 허리를 깊게 패어낸 비무장지대 전체를 생태계의 낙원으로 복원하려는 거대한 구상의 거대담론보다 지금 첫 삽을 뜰 수 있는 작지만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성지 복원으로 천 년 넘게 갇힌 궁예의 웅혼한 혼을 불러내는 초혼제(招魂祭)가 남북 번영과 평화의 역사적 장정을 축복할 것 같은 통쾌한 예감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 글의 일부는 2018년 7월 27일 문화일보 '살며 생각하며' 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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