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비바 파파! 교황 방한 현상의 폭풍
작성일 : 14.09.01   조회수 : 923

매일신문 | 2014. 9. 1.

 

[계산논단] 비바 파파! 교황 방한 현상의 폭풍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가시고 우리에게 남겨준 메시지를 해독하려고 마음이 바쁘다. 아시아 청년대회 참관이 목적이고, 화해와 평화를 위해 북한 인권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번 교황 방한이 우리에게 던진 잔잔한 폭풍현상의 실체를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교황이 가는 길과 세속의 우리들이 가는 길이 같을 수는 없다. 이미 1천500년 전에 세속 군주들을 이기고 신정국가를 구현했던 흔적들도 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의 아우라는 이슬람과의 종교전쟁의 다른 형태로, 지금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을 학살하는 만행이 계속되는지도 모른다. 유엔 사무총장의 평화를 위한 현실적인 중재도 힘이 부치는데, 인류 평화와 사랑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야 하는 교황의 설 자리는 없을 수 있다. 이제는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약한 사람들에게 우선 인간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메시지라도 전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100여 년 전에 순교한 124위의 시복식과 미사가 광화문 앞 광장에서 열렸다. 시청 앞 광장까지의 넓은 세종로에는 100만 명 가까운 가톨릭 신자, 시민들이 교황을 영접하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운집했다. 빛을 비추게 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처음 겪는 장관이 펼쳐졌다. 그 광장은 민주항쟁과 월드컵 붉은 악마의 응원과 대통령의 장례식으로 함성과 슬픔이 하늘까지 폭발했던 곳이다. 텔레비전에 비친 100만 명에 가까운 환영 인파의 얼굴들이 그렇게 간절하고 선하게 다가온다. 얼마 만에 보는 우리의 민얼굴들인가. 이제는 세속의 권력에 휘둘렸던 트라우마들을 가장 낮은 곳에서 인권을 실천하는 유별난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서라도 위안을 받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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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의 소박한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제대가 더욱 겸손해 보인다. 

경복궁 너머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세속권력에게 더 많은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사진 | photo@newsis.com

 

 

빛의 대문인 광화문(光化門) 앞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십자가도 세워지지 않았고, 근엄한 권위주의로 덧칠한 화려하고 드높은 제대도 없었다. 소박한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무대이다. 국민의 지도자라고 구두선처럼 외치는 어느 집권자도 상상이라도 해본 적이 없는 광경을 지금 우리는 경험한다. 삼엄한 경호부대도 없이 인파를 헤치며 작은 차 쏘울과 순박하게 개조한 승합차에 실려 입장하는 교황의 파격은 권위주의에 익숙했던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이다. 우선은 대형 승용차나 화려한 의자에 익숙한 한국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몸을 도사렸을 것이다. 권력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이렇게 젓는 것이라고 경복궁 너머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세속 권력에 더 많은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종교의 역할이 이런 것이며 세속의 권력이 하지 못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황청의 교황에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노란 편지봉투를 전하는 유가족의 초췌한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보는 듯해서 더욱 부끄럽게 한다. 손을 잡고 절박한 심정의 토로를 묵묵히 들어주는 교황의 몸짓 하나만으로도 그러했다. 그저 종교적 위안만을 받고자 함이 아닐 것이다. 속세의 우리 헌법기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의 절규에 다름 아니다. 이 참사는 지금 여기서 일어났고, 수백 명의 청년들이 우리 눈앞에서 죽어갔다. 100일 넘게 미적대는 한 줌밖에 안 되는 정치 지도자들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논란이 얼마나 부끄러운 우리의 수준인지를 백일하에 드러냈다.


항상 들어왔던 메시지가 교황의 미소와 사랑의 손길을 통해 큰 울림으로 다가선 것은 우리가 이제야 인간의 본모습에 마음을 여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교황께서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에게 눈길을 주는 것에 주저하고 혹은 겁내게 했던 어떤 빗장을 열게 한 것이다. 동굴 속에 갇힌 줄도 모르면서 갇힌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을 위한 탐욕의 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둡고 답답한 이 동굴을 뚫고 비친 한 줄기 빛으로 어둠에 익숙한 사람들은 인지부조화의 빈혈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제는 어떻게 균형을 잡고 넓은 광장에 나가 바로 서느냐가 교황 방한 현상 해석의 요체가 아닌가 싶다. 비바 파파!


조상호 | 나남출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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