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인문학을 위한 산림청
작성일 : 15.09.03   조회수 : 1068

산림청 강연 | 2015. 9. 3. 


숲의 인문학을 위한 산림청

 

 

숲속의 책들


귀한 시간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신원섭 청장님, 김용하 차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정조의 왕위계승 일성을 빌리자면, “저는 나무 심기의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면서 이 자리에 서야 합니다. 정조는 24년 재위 기간에 수구세력과 목숨을 걸고 백성을 위한 개혁정치를 이루다 의문의 죽음으로 저들에게 굴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17세기 후반 영조 정조시대에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명군으로 평가받습니다. 혹시 압니까. 이 아마추어가 나무 심고 가꾸는 일에 큰일을 이룰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평생을 산림행정에 몸을 바치시는 공직자 앞에서 감히 새마을 성공사례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36년간 언론출판의 외길을 걷는 제가 나무 심는 아마추어로 거듭나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드림으로써 산림행정에 무슨 도움을 드리겠다는 마음보다는 나무와 연관된 한 삶의 질감을 그냥 보여드리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6년간 사회과학 전문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산과 관련된 책들을 의외로 많이 출간한 것에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먼저 22년 전인 1993년 한국미래학회와 함께 〈산과 한국인의 삶〉을 출판했습니다. 한국문화와 산, 국토공간으로서의 산, 한국산의 지리학과 생태학, 산림경제학, 산림관리학, 나의 인생과 문학에서 산이란 무엇인가 등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으로 책상물림이었던 제가 산에 대하여 눈을 뜬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과 한국인의 삶〉 기획은 ‘〈물과 한국인의 삶〉, 〈땅과 한국인의 삶〉, 〈하늘과 한국인의 삶〉, 〈멋과 한국인의 삶〉, 〈불과 한국인의 삶〉, 〈강과 한국인의 삶〉’으로 계속됩니다.


당시 산림청장이셨던 이영래 청장께서는 〈산과 한국인의 삶〉 책 800권을 구입하여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사회의 지도층 인사에게 배포함으로써 산림청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산주들에게는 숲의 인문학을 열 수 있는 이론을 제공했습니다.


그다음 해인 1994년에는 〈중앙일보〉 고혜련 기자가 발로 뛴 현장취재인 〈자연에 산다〉를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그때부터 부지불식간에 자연에 묻혀 사는 그이들의 삶을 부러워했던 모양입니다. 2000년에 광릉숲 옆에 집을 짓고 살게 된 것도 이러한 DNA의 발로였을 것입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언제인가 읽은 책 한 줄이 삶을 바뀌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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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산림청

 

 

2008년 출판한 김수학 선생(전 경북도지사, 국세청장, 새마을운동 본부장)의 《이팝나무 꽃그늘》에서는 민둥산의 녹화사업과 새마을 운동을 다루었고, 2013년에는 조림의 역사와 성공요인을 다룬 배상원 박사의 《산림녹화》를 역사박물관 총서로 출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곧 출간될 《숲의 역사 새로 쓰자: 산림녹화 어제와 오늘》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기획한 ‘육성으로 듣는 한국경제기적’ 시리즈의 하나로 1967년 발족한 산림청의 최장수 산림청장이셨던 손수익 청장님의 증언인 《숲의 역사, 새로 쓰자》입니다.


이만하면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최소한 기본은 갖추었다고 스스로 자위해 봅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여러분들도 이미 눈치채고 있겠습니다만, 사회 변동의 한가운데서 그 변화에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님이 틀림없습니다.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바람이 불어오는 변화의 징후들을 공유했으면 싶습니다.


이야기의 편의상 통계를 거칠게 간추려 본다면, 우리나라 전 국토의 65%가 산지이며 그중 또 65%가 놀랍게도 국ㆍ공유림이 아닌 사유림이고, 또 사유림 중의 65%는 종중(宗中)소유라고 합니다. 국ㆍ공유림에 관한 정책이나 관리는 여기 산림청의 몫임이틀림없고, 종중 소유의 산은 개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보다 종중 전체의 합의에 따라야 하므로 보수적으로 종중재산의 보존에 급급한 것이 현실입니다.

 

저와 같이 순수하게 산을 보듬고 숲의 인문학이라도 꿈꾸는 사람의 사유림은 전체 산지의 22.5%에 불과합니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일깨워야 하고 지도해야 한다는 배려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거국적인 산림정책의 잣대가 아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시선으로 능동적 참여자인 이들을 보듬어야 합니다. 이들을 산림관련법 위반의 예비 전과자들로 내몰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산림을 기반으로 숲의 인문학을 펼쳐나갈 건전한 양식을 가진 시민들이라는 믿음의 따뜻한 눈길을 주십시오.


자그마한 예입니다만, 꽃 이름, 나무 이름을 알려주는 스마트폰의 ‘꽃천사 식물천사’ 〈모야모〉 앱도 타산지석이 될 겁니다. 이것은 꽃 이름, 나무 이름이 궁금한 시민들에게 식물도감의 권위자가 질문에 응답하는 도식적인 체제가 아니고, 시민 모두가 참여하여 묻고 답하는 지식을 공유하는 공개성의 극치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내비게이션 앱인 〈김기사〉가 국토부 교통정책관의 예산작품이 아니라 개인의 창의성이 시장에서도 성공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 사회는 21세기인데 20세기의 법망이 신줏단지처럼 모셔지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일제시대에 제정된 〈산림법〉에서는 영림서(營林署)를 두어 식민지의 나무를 군수품을 생산하는 제국주의의 군사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혹독한 감시 감독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영림서가 광복 후 12년 만에 산림청으로 환골탈퇴하게 됩니다. 초창기에는 사법권까지 부여된 산림청 엘리트들의 리더십에 따른 40년 넘는 국토녹화를 위한 거국적인 피땀 어린 조림사업, 육림사업으로 거대한 숲을 이루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동시에 추진되었던 절대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새마을운동과 식량민족주의를 외쳤던 통일벼의 개발로 주곡인 쌀농사의 자급자족이라는 성공적인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세계화의 무역전쟁으로 선택과 집중의 결과인지 더 많은 자동차를 수출하기 위해서인지 그 대가로 쌀 수입이 개방되고 절대농지들은 잡초로 뒤덮여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밀 살리기’의 고달픈 외침은 밀가루 전량 수입이라는 현실의 파도에 휩쓸린 지 오래입니다.


이제 FTA 협상으로 다양한 외국 농수산물의 수입은 일상화되고 이에 따라 젊은이들의 입맛도 글로벌화되었습니다. 누굴 탓하며 무엇을 지키지 못해 안달하지도 못한 채 무역대국 세계 10위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인사청문회에서 절대농지 소유가 죄목이 되는 국민정서상의 아킬레스건이 될 뿐 실제로는 누구도 농사를 지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 국토 65%를 차지하는 우리의 산야는 FTA의 대상품목도 아니며 글로벌한 수출대상도 아닌 순수한 로컬일 수밖에 없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토가 광대하고 산야가 넓어 목재를 수출하는 우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목재나 펄프를 자급자족하는 나라도 아닙니다. 단지 ‘이 강산 푸르게 푸르게’의 산림녹화라는 절대명제에 매달렸던 지난날이었습니다. 

 

나무 심는 마음은 농산물처럼 한 해 농사가 아닌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 하는 본연의 특수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개발의 연대에 산림녹화와 산지보존에만 매달렸던 우리의 산림정책도 산을 사람 사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중장기 계획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야 할 것입니다.



산림문화ㆍ휴양


우선, 이제는 대부분의 산들이 너무 울창해져서 ‘입산금지’의 경고판이 아니더라도 들어갈 수 없는 정글 같은 곳이 많습니다. 대대적인 간벌이야 장기적으로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하겠지만, 우선 할 수 있는 시각(視覺)의 교정을 생각해 봅니다.


잘 뚫린 도로변 산속의 나무들을 뒤덮는 창궐하는 칡넝쿨을 보십시오. 햇빛을 보지 못해 고사하는 나무들의 신음소리와 우리의 목을 죄는 듯한 밧줄로 숨이 막힙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풍경이 우리가 꿈꾸던 숲은 아니었지요. 눈에 잘 띄는 곳이 이럴진대 깊은 산속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ㆍ공유림이야 산림청의 일이겠지만, 사유림이라도 산속에 사람들을 살 수 있게 유도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자기 재산인 나무가 칡넝쿨에 덮여 몸살을 앓는 모습을 수수방관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땅의 주인인 그들에게 우선 낫이라도 손에 쥐여 주어야 합니다.


거대한 산림을 가진 외국의 경우는 아이러니하게도 때때로 일어나는 자연히 발화하는 산불이 자연의 청소부 노릇을 한다고도 합니다. 우리는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다 산불로 이어지는 부주의한 재해가 있었지만, 이제는 논밭에 열정을 가진 농부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농촌을 살리자는 정부보조금이 적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이윤창조가 눈에 보이는 산업화로 인한 이농대열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산야에 잣, 호두, 밤나무 등 유실수를 심자는 경영지원도 물밀 듯 넘어오는 값싼 중국산 수입품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일방적인 규제 일변도의 ‘금단의 영역인 묶인 산’이거나 ‘잠자는 산’에서 ‘산림에의 초대’, ‘산의 인문학의 초대’로 이어지는 산림행정의 참신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더욱 박차를 가해서 실천되었으면 싶어 말씀드렸습니다.


도시를 탈출하여 숲으로 줄지어 몰려드는 새로운 “로컬 이민행렬”을 꿈꾸어 봅니다. 그들이 투자이민자이건, 기술을 가진 이민자이건, 노력봉사 이민자이건, 생계형 이민자이건, 인생 2막을 꿈꾸는 이민자이건, 산림청의 수신호에 따라 행렬을 이루면 됩니다. 단지 산에 들어와 살겠다는 그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전통에 충실하여 논밭은 꼭 보존하고 아버지 같은 농부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농부는 이제 전체 인구의 7% 주변이라고 합니다. 이 인구에는 농촌만이 아닌 산촌, 어촌의 사람들이 포함됨은 물론입니다. 압축성장과 도시집중, 이농의 당연한 결과가 이 수치에 나타납니다. 선거를 통한 권력의 창출이라는 민주시대에는 아무래도 유권자의 숫자가 국가 정책의 기본이 되기도 합니다. 7%도 되지 않는 이 유권자들에게 정책적인 배려의 햇살이 크게 미칠 리 없습니다. 


자꾸 줄어드는 농촌 산촌인구에 초조할 것만 아니라, ‘역이민’의 발상처럼 귀촌 귀산하려는 양질의 인구를 늘리려는 유인책을 우선은 작은 것부터 시작했으면 싶습니다. 


그것은 우선, 산지라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지는 작은 사유지에 대해 일률적으로 농림산지나 보전산지로 묶어 놓은 산림법의 규제의 끈을 놓아야 합니다. 그들을 생산산지로 해방해야 합니다. 국유농지가 없듯 사유지인 산림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 1천 달러가 꿈이었던 절대빈곤의 시절에도 주민자치와 자조 협동의 새마을 성공사례는 국민의 잠재된 능력에 대한 믿음이 그 기본이었듯이, 이제 3만 달러를 넘보는 시대에 숲을 향한 이민의 대열에 선 그들은 건강한 시민의식으로 성장한 국민임을 믿어야 합니다. 두메산골의 촌부들을 지도 감독해야 한다고 지난 60년 동안 규제일변도로 반복되었던 일방적인 행정은 동굴 속의 독백에 불과합니다.


드디어 2006년 〈산림법〉이 〈산지관리법〉,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대체되는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더욱획기적인 것은 2014년 〈산림문화ㆍ휴양에 관한 법률〉의 제정에 이릅니다. 이 법은 산림문화와 산림휴양자원의 보전ㆍ이용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국민에게 쾌적하고 안전한 산림문화ㆍ휴양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다음과 같은 이 법 제2조의 용어의 정의는 너무 신선합니다. “산림문화ㆍ휴양”은 산림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 총체적 생활양식과 산림 안에서 이루어지는 심신의 휴식 및 치유 등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연휴양림”은 국민의 정서함양ㆍ보건휴양 및 산림교육 등을 위하여 조성한 살림을 말한다고 정의합니다.


자연보호를 위한 맹목적인 규제일변도의 산림정책이 사람들을 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동기부여를 하는 지원책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도회지의 간사한 계산법은 공기 좋은 시골 인심을 기대하고, 잉여소비에 지친 심신을 잠시 힐링해야 한다고 현지사람들에게 숲 향기를 보존하라고 합니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을 강요하는 이상한 형국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현장을 파괴하고 지천으로 널린 야생화와 울창한 숲들을 개발의 미명으로 깔아뭉개는 개발이익은 누구에게 가는 것입니까. 산촌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들이 주인이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도 입법화가 시급합니다.



산처럼 나무처럼


이제는 산의 정상(頂上)을 정복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는 기록도 이제는 자꾸 어설퍼집니다. 둘레길이라는 예쁜 이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생활환경에 따른 큰 변화입니다. 그 둘레길은 산자락을 끼고 농어촌과 산촌의 삶을 기웃거리는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처럼 자신에게만 좋고 타인에게는 책임 없는 나그네의 길이지요. 그 좋은 경관을 감탄하기도 합니다만, 그리 좋으면 그곳에서 살라고 하면 모두 외면하겠지요.


몸에 밴 도시적인 편리함이 온통 불편함으로 바뀔 수도 있으며 자기의 이익에는 눈을 밝히면서 남들을 배려하는 손길을 내보인 적이 없는 매몰찬 이기주의를 들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영위하는 데 선택이 가능하다면, 내가 편한 길보다 불편한 길을 택했을 때 실수가 적습니다. 남들을 배려하기 위해 자신은 조금은 불편하게 사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바른길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정부가 시민들의 건강한 시민의식을 굳게 믿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있음은 물론입니다. 참고가 될까 하여 책에서 읽은 미국의 사례를 전해 드릴까 합니다.

미국의 경우처럼 숲 보호를 위해 산속 깊이 꽁꽁 숨은 화전민의 민낯을 공개하는 숲속에 파크웨이를 뚫은 역발상의 대전환도 고려해 봄 직합니다.



애팔래치안 산맥 그 위를 떠가는 하늘 길


한경섭 선생의 에세이 《미시간 기러기》(나남출판, 2001)를 따라가 봅니다. 반면교사의 시사점이라도 얻으시라고 조금은 긴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 서북부의 로키산맥과 더불어 미국의 양대 산맥인 동북부의 애팔래치안 산맥을 관통하는 ‘블루 리지 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가 그곳입니다. ‘애팔래치아’의 미첼 산은 높이가 2,037미터나 되지만, 대부분의 산들은 1천 4∼5백 미터 정도로서 우리나라의 산들처럼 둥그스름한 모습을 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우리들 눈에는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비치는 그런 산들입니다.


1910년대부터 말이 나와서 1935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대에야 완성한 이 꼬불꼬불한 아름다운 2차선 도로는 그 길이가 자그마치 700마일(1,100km)이 넘는 한줄기의 길고도 긴 산길입니다. 우리나라의 두만강쯤에서부터 출발하여 태백산맥의 능선을 타고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부산까지 내려가는 도로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대충 이 정도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 길 이름을 ‘블루 리지’라고 한 것은 그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짙푸른 바다 같은 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 지역의 습도나 온도의 영향으로 인한 자연현상이라는 지극히 과학적인 설명이 책에 있었습니다만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눈가는 데 없이 펼쳐지는 숲의 바다뿐입니다.


이 길은 아주 좁고 커브가 많은 도로이고, 도중에 고속도로와도 두 번 교차함은 물론 산을 넘어가는 작은 지방도로들과, 또 산간마을 옆을 지나면서 포장도 안 된 좁은 동네 길들과도 수없이 교차하지만, 단 한 번도 멈출 필요가 없이 논스톱으로 2천 8백 리를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된 환상적인 길이지요. 도로상태는 완벽할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지만 길이 워낙 좁고 커브가 많아 빨리 달릴 수도 없습니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길옆에 자주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빨리 가도 꼬박 3박 4일은 달려야 하고, 조금 넉넉히 잡아 제때에 식사도 챙겨 먹으면서 가자면 적어도 한 주일은 잡아야 하는 먼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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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바다를 관통하는 하늘 길, 블루 리지 파크웨이. 사진 | Kadokal

 


많은 한국사람들이 미국을 여행하면서, 특히 잘 보존된 자연이나 잘 가꾸어진 길들을 보면 이 나라는 땅이 넓으니까, 또는 돈이 많으니 잘도 해놓고 산다고 흔히들 말을 합니다. 이 블루 리지 파크웨이를 달려보면 바로 그런 말을 할 만한 길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순전히 할 일 없이 구경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길을 그렇게 엄청나게 닦아놓은 것을 보고 돈이 남으니 별일을 다 해 놓았다고 말할 만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 길을 만들어 온 반세기에 걸친 그들의 노력을 읽어보면 그런 길들이 반드시 돈이 남아서 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슨 산업개발을 위한 절실한 길도 아닌, 이 산골길의 건설을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비용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공사를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1956년에야 준공식 비슷한 잔치를 가질 수 있었고, 그 후에도 공사를 계속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달려보는 그런 길이 만들어진 것은 공사를 시작한 후 40년이 지난 1970년대였습니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고 정착한 이민 1세들은 주로 북유럽의 산간지역에서 산지생활에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며, 이들은 오로지 내 땅을 갖고 싶은 한 가지 희망으로 이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임은 물론입니다. 서부가 개척되기 이전에 그들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일부 인디언 부족들이 살던 이 깊숙한 산지로 들어와 나무를 베어 통나무집을 짓고, 나무를 벤 자리에 밭을 일구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서부로의 대확장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번영의 길을 가게 되지만 별 볼 일 없는 이 산간지역은 뭇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물러났습니다. 다만 이 지역은 풍부한 산림자원을 가진, 그것도 주로 참나무 같은 가구나 건축용으로 적절한 나무가 많은 숲으로 덮여 있었고, 이런 값비싼 나무에 눈독을 들인 장사꾼들이 마구잡이로 벌목하는 바람에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쯤에는 그 광대한 지역이 거의 벌거벗겨지고 별로 쓸모없는 잡목 나부랭이나 남은 땅이 되어버렸으며, 먼저 그곳에 들어온 정착민들은 벌목장에서 노동품팔이도 하면서 농사도 짓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미국의 파크웨이 건설에 관한 주무부처라고 할 수 있는 ‘국립공원 서비스’의 도로건설은 기존 토지소유자, 심지어 자기토지의 일부를 내놓거나 수용당하면서도 그 앞으로 나는 길에서 아무런 이득을 볼 수 없도록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이들의 원칙입니다. 


때로는 자기땅 앞으로 길이 나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토지수용에 동의한 사람들이 아무런 이용권이나 이득이 없음을 알고 격렬하게 항의한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절대로 남의 땅에다 붙여서 옆으로 길을 내는 일이 없이 수용한 땅의 적당한 면적을 사유지와 길 사이에 남겨놓아 나무를 심어 시계(視界)를 차단하는 등 철저히 경관을 관리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그 길을 만들어놓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 길은 어느 도시에서 어느 마을을 빠르게 연결하는 기능도 없음은 물론이지만 그것 때문에 특별히 장사가 될 만한 것도 없고, 그 길 때문에 무슨 도시의 개발이 촉진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길이 있기 전, 그러니 그 지역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깊숙한 곳에 남겨져 있을 때는 그곳에 정착한 농민에 의해 산지가 파헤쳐지고, 약삭빠른 벌목업자들과 광산업자들이 마구잡이로 산길을 내고, 나무를 베어 내리고, 땅을 파헤쳐 거의 황폐한 땅으로 되어가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길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한 뒤로 광대한 숲이 다시 살아나고, 그래서 오늘날 이 넓은 미국 땅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땅으로 변한 것입니다.

 

사람에 의해 마구 파헤쳐지던 자연이, 뭇사람들의 시선 안으로 들어오자 아무리 개인 땅이라고 해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자연보호자들의 집요한 운동도 주효했겠지만, 한동네에서 어떤 보호조치에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지면 옆 동네에서 이를 본받고, 이 주에서 하는 일은 다른 주에서 법으로 만들어지면서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숲은 다시 살아나고 새와 곰과 사슴이 되돌아온 것이지요.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 곁을 떠나갔던 숲이 사람들 곁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1998년도에 미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링컨 대통령의 기념관 방문객이 430만 명인 데 비해, 이 블루 리지 파크웨이를 찾은 사람이 1천 9백만 명이나 되고, 그 길에 연결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의 방문객도 999만에 달한다는 통계가 이 길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그 길로 인해 그 동네에 땅 부자가 생기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수많은 미국 사람들에게 자연의 중요함과 평안함을 일깨워주며 마음의 풍요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지요.


자연을 보호한다고 법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철조망 쳐놓고 물리적으로 막아보았자 금지가 있는 곳에는 예외가 있게 마련이고, 예외의 혜택이 있는 곳에는 부정부패가 따르는 생리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호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금지가 풀리는 날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어떤 제도나 의사결정은 권한을 가진 당국자의 발상이나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만들어지고, 또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문제들을 잘 고려하여 만듭니다. 그렇게 하면 아주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건전한 양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발상과 판단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야 사람들에 의해 사랑받고 지켜지는 제도가 되며, 이해관계자의 문제가 고려되지 않을 때 일부 억울하다는 사람도 나올 수도 있지만 오히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닌, 편파적이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한 제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행을 감시하는 것도 행정력이나 경찰력보다는 시민의 눈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렇게 발전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나라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집단이기주의와 공공이익을 많은 경우에 혼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집단이기주의는 개인적 이기주의보다 훨씬 큰 폐단을 갖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공공이익으로 호도하고 있거나 아니면 크게 유념하지 않고 살고 있지요. 그리고 이해관계 집단의 큰 목소리는 늘 말 없는 다수보다 시끄러웠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그러한 특정집단의 이해가 당국자들의 이해와도 늘 일치되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들이 최근까지 보아왔던 우리들의 과거가 생각납니다. 경관 좋은 동네에 길이 만들어진다는 말만 나와도 땅값이 치솟고, 그리고 길이 만들어지자마자 장사꾼들이 길가에 국적불명의 볼썽사나운 집들을 앞다투어 세우고 장사진을 벌입니다. 


그러면 친절한 행정당국은 그들의 장사 편의를 위해 출입로와 신호등을 만들어주고, 그래서 몇 달이 가기도 전에 그 길의 미관은 고사하고라도 그 길을 이용하는 통행자의 편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고, 도로의 가장 기본목적인 차량의 통행기능마저 상실되어 버려도 누구도 챙기는 사람이 없이, 오직 그 길가에 땅 가진 사람들의 잔치판으로 변해 버린 일들 말입니다.


그런 약삭빠른 일부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왜 모든 사람들이 내는 세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의심도, 질문도, 답변도 없었고, 그렇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고 숨어서 한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길이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길 근처에 땅을 가지고 있는 일부 사람들의 이득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기본 철학이 담겨 있는 원칙이 세워져 있고, 그런 원칙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고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미국의 길을 비교해 보게 됩니다.



산이 우리들에게 오게 해야


귀촌, 귀향하여 인생의 제2막을 살려는 사람들 중에서 산촌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산’은 김광섭 시인과 고은 시인이 잘 그린 것 같습니다. 우리 산림청에서도 이런 산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그 한 자락을 맞들겠습니다.



…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神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사귀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또 고은 시인의 〈산〉은 절창입니다. 여러분도 같이 감상하십시오.



산기슭에 태어나서

나도 산이었다

산과 사람이 하나인 시절

어린 아이 깔깔대며

나도 산이었다


젊은 날 산에 들어가

내 마음 가득히

산 소나기에 젖어

겨울이면 겨우살이 싱싱하여라

나도 산이었다


신새벽 어둠 속이어도

날 저물어

온통 산이 어둠 속이어도

나에게는 그리운 것이 다 보였다

아주 환한 날 먼 데까지


그러다가 산을 떠나서

파도소리 어느 바다였던가

여기 저기 떠돌다가

불현듯 고개 들어

바라보면 거기가 산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산이

내가 떠난 산과

어찌 다르리오

내 몇만 개의 생애 이룩하여

나도 산이었다.


산이 말한다 그 푸른 눈매 지워

오고 싶거든 오라한다

태어난 산이거든

그것이 돌아갈 산이므로

다시 나는 산이리라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나무입니다. 어느 나뭇가지라도 자세히 보면 아름다운 나무의 수형이 있습니다. 영주 부석사의 대웅전을 오르는 계단 앞에 안양루 지붕과 기둥 사이의 공포를 유심히 살펴보면 중간중간에 다섯 부처의 모습이 숨어있는 듯이 보이는 환영보다 훨씬 현실적입니다.

 

나무가 모여 숲을 만든다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나무 하나가 이미 나무가 모여 만든 숲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크고 있는 나무들까지 합해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해서 나무는 이상이 아닌 바로 손에 잡히는 우리 앞에 있으며 우리가 그 숲속에서 어떤 의미의 나무이고자 하는 겁니다. 작년 울진의 대왕 금강송을 알현하고서 이런 생각의 확신하였습니다. 거목 숭배 신앙 그 이상이었습니다.


영화 〈아바타〉의 기억을 되돌아보십시오. 250년쯤 뒤의 우주의 어느 행성에서 원시의 거목에서 삶을 영위하는 평화로운 나비 족들이 인간의 식량 확보를 위해 개발의 불도저에게 밀려나는 공상영화입니다.


탐욕의 인간들이 침략하기 전 그곳의 주인은 나무들이었습니다. 땅속에 얽혀 있는 뿌리들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 나무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인간은 잠시 거대한 나무의 품을 빌려 삶을 영위할 뿐입니다. 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도 나무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짧은 삶의 인간들이 그려낸 숲의 생태계 연구에서도 발도 없는 나무들이 움직이는 천이현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오랜 시간을 거쳐 씨를 뿌리고 살고 죽고를 거듭하면서 생태계의 조건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는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겠지요. 어쩌면 지구에 온 외계인은 이 나무들인지도 모릅니다.


고대신앙의 전통이기도 합니다만, 몇백 년간 마을을 지켜낸 신령스럽다는 당산나무에게 그들의 꿈과 바람과 액땜을 기도하는 마을사람들의 경건함을 생각해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가로수도 권력이다


마지막으로 귀중한 시간에 짧은 한담(閑談)이 허락된다면 보탤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주변에서 숲과 나무들을 쉽게 만나는 기회는 도회지 안에 조성한 도시림(都市林)과 전국 도로가 닿는 곳 어디에나 있는 가로수이지 싶습니다. 가로수의 수종(樹種) 결정도 산림청 업무 중의 하나이고 국민들 일상생활에 핍진(逼眞)한 풍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로수도 권력인 모양입니다. 조선시대의 한적한 길에 이정표 삼아 5리마다 심었다는 오리나무나 밤길을 밝히려 심었다는 야광나무가 가로수의 효시였지 싶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전쟁준비와 약탈을 위한 식민지 지배의 효율성을 위해 먼지 날리는 신작로의 개설과 함께 심어진 속성수인 이태리포플러 길로 시작됩니다. 한국전쟁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폐허가 된 거리에 미국서 들여온 미루(美柳)나무 가로수가 대종을 이루다가 그 후 메타세쿼이아 길로 바뀝니다. 


지금은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로 추앙되는 전라도 담양, 익산의 메타세쿼이아 길만이 아니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메타세쿼이아 길의 추억이라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새빨간 벌거숭이 산들만 눈앞을 가로막던 가난했던 그 시절의 녹색 그늘은 이제는 추억의 나무들로 기억되는 이 가로수 밑이 유일했는지도 모릅니다.


가로수 나무에서 일제의 잔재와 전쟁의 상처를 벗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습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경제성장과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한여름 그늘을 주고, 자동차 소음을 완화시키고 공기를 정화하며 아름다운 경관을 주는 가로수에 대해서도 눈길을 주는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우선 먼지가 일던 비포장 신작로 길이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바뀌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은행나무가 대종을 이루는 가로수 길이 일상화됩니다. 지금은 거룩한 상징으로 승화한 청주시 입구의 녹색관문이 된 플라타너스 가로수 숲길을 생각해보십시오. 광화문 앞길의 웅장했던 그 은행나무들의 가로수 길은 또 어떠했습니까.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 시를 감상하시면서 가로수길의 플라타너스 나무와 어린 시절 뛰놀던 학교 운동장 가의 거목이 된 플라타너스 나무까지도 같이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아무래도 가로수의 대변혁은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고품격인 느티나무가 88 강변도로에 대거 등장한 일일 것입니다. 이제 느티나무는 전국적으로 가로수의 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가끔씩은 버드나무가 등장하여 풍류를 더하기도 합니다.


쌀 뒤주에서 인심이 나듯이 가로수도 사치를 시작합니다. 최고의 사치는 귀하다는 소나무가 가로수로 등장한 데 있습니다. 서울 중구의 가로수는 모두 소나무로 바뀝니다. 남쪽 따뜻한 지역에서는 정원 속에서 귀한 대접을 받던 배롱나무도 가로수로 등장합니다. 서울 서초동 법원 올라가는 길에는 마로니에가 가로수로 그 위용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목이라는 벚나무도 원산지가 제주도의 산벚이라는 주장에 힘입어 전국도로에 벚꽃이 필 정도로 국민들의 정서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대왕참나무, 목백합이 가로수로 선을 보이고, 청계천의 물줄기가 복원되면서 이팝나무가 청계천변 가로수로 자태를 뽐내면서는 회화나무와 함께 전국의 가로수로 확산됩니다. 이 나무들의 하얀 꽃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만개합니다. 지난달에는 귀하다는 노각나무를 성급하게 세종시 가로수로 심었다가 실패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때그때의 권력자나 단체장들의 나무에 대한 안목이나 호불호에 따른 것이라고 하나 시민들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로수의 수종(樹種) 선택권은 엄청난 권력임이 틀림없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산림청이 산속의 나무만을 관장한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산림청이 우리 생활에 밀접한 가로수 수종을 결정하는 데에는 국민정서를 읽어내야 하고 가로수를 통해서 숲향기와 나무사랑을 일상화한다는 데에 막중한 책임과 보람이 함께하는 것임을 재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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