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소나무야 소나무야
작성일 : 14.08.04   조회수 : 1327
매일신문 | 2014. 8. 4.


[계산논단] 소나무야 소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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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대왕 금강송 사진 촬영의 편의를 위해 무참하게 잘린 3백 년생 '신하 금강송'의 그루터기 

 

 

‘매일신문’ 취재팀이 보도한 220년이 넘는 대왕송들이 무참하게 잘린 밑둥치의 보도사진 한 장이 천둥 치듯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한다. 울진군 서면 소광리는 200년 이상 된 금강송만 8만 그루가 자라는 대왕송 군락지다. 사진을 더 잘 찍겠다는 탐욕으로 신하 소나무 황장목 10여 그루가 사진작가라는 위인의 전기톱날에 운명했다. 오랜 기간 인간의 도끼날뿐만 아니고 전쟁의 포탄을 피하고 해마다 들이닥친 태풍의 눈들까지 피해갔던 신목들이다.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600년 된 천년대왕송까지 가지를 잘라내고 손질하고 사진을 찍어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추진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작품전에서 한 점에 400~500만 원에 팔았다고 한다. 문화유산은 조그만 돌덩이 그 자체에서도 역사의 숨결을 느낀다는데, 수백 년을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 자연유산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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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신하 금강송'

 

 

인간의 욕망에는 그 한계가 없다지만 더 이상 공동체의 일원 자격을 내동댕이친 폭거이다. 미천한 노인의 광기로 불태운 숭례문은 다시라도 짓는다. 고이 간직한 20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의 녹색 생태계를 도대체 복원은 할 수 있는지를 만행을 저지른 장국현이라는 사진작가에게 묻고 싶다. 영덕 법원은 고작 벌금 500만 원을 물렸다고 한다. 검찰이 그를 구속 수사한다는 속보는 아직 없다. 그러나 세월호 뒷수습으로 사회정의 구현에 잠시 뒤뚱거리는 검찰이지만 국민 정서를 외면하는 법원의 처사에 승복할 리 없을 것이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이러한 심정을 소설가 박경리는 ‘토지’에서 하늘과 땅이 맞붙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절망의 절규를 했다. 하늘과 땅이 맞붙어 생명문화유산을 유린한 인간들을 맷돌처럼 갈아버렸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라고 되뇐다.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창출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산다. 소나무 박사인 전영우 교수가 발품을 팔아 전국에서 찾아낸 한국의 명품 소나무 사진집은 하늘과 땅의 가교인 신묘한 벗, 명목 소나무 28그루에 바치는 예찬이다. 자연유산은 지성으로 겸손한 인간에게만 600년이 넘는 그 품을 살짝 내보여 주는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소나무 사진작가로 우뚝 선 배병우 작가는 더욱 자랑스럽다. 이른 새벽 장엄한 안개에 휩싸인 소나무의 성스러움과 꿈틀대는 생명력을 사진 속에 녹여낸다. 강렬한 흑백 톤의 거친 질감이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는 소나무의 속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찰나의 한 컷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행의 시간을 소나무와 교감하면서 보냈을까. 이 소나무 사진들은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주는 한국의 선물이 되기도 했다. 그는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의 풍경 촬영에 초대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이런 고향을 닮은 자연과 미묘한 합창을 하는 사진예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건을 사회적 어젠다로 끌어올린 사람은 고향의 황장목 군락지를 지키는 울진 생태문화연구소 이규봉 소장이라 한다. 그는 지금도 금강송 묘목을 몇 년째 공들여 키우고 있는 외로운 의인이지 싶다. 나라의 녹을 먹는 관군들이 그 직분을 팽개칠 때 사회 구석구석에서 이런 의인들이 생계를 위협당하면서도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항상 이 사회를 지켰다. 지금 박수라도 보내면 그이들은 오히려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알아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누군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겸손 앞에 자신의 탐욕에 급급한 우리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할까 걱정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항상 그러했듯이 우리들의 관심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 것이라고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삶은 더 낮은 곳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것이다. 뜨거운 햇살이 폭포처럼 내리꽂는 삼복더위의 한가운데에서 녹색생태계의 궁전에는 대왕송의 존재 자체가 태고의 위엄으로 세세연년 더욱 우뚝해야 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조상호 | 나남출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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