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을 잉태한 폭우
작성일 : 12.07.05   조회수 : 1395

가뭄을 잉태한 폭우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일 때도 있다. 살면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항상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손해 보는 듯한 조금은 불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후회가 적다. 그 길이 대개는 ‘역사의 신’까지 찾지 않더라도 내가 마음속에 갖고 있는 양심이라는 이름의 나의 신(神)의 목소리가 인도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상기후라고 호들갑을 띠는 요즈음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그러하다. 편하게 살자고 뿜어대는 이산화탄소의 과도한 배출로 극지의 빙하가 녹고 오존층이 뚫리면서 예견된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이에 대비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의지도 없는 것 같다. 아직도 눈앞의 권력부스러기에 혈안이 되어, 이제는 조금은 불편하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할 어른스런 권위도 없다. 세계무역 10대국 안에 손꼽힌다는 경제대국이라는데 국가 자존심도 없는지 나만 아니면 된다며 탐욕에 빠진 천민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헤맬 뿐이다. 

 
요즘 지구환경에 관한 TV 다큐멘터리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인기를 끌고 있다. 인간 중심의 자연환경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우리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인지 모른다. 도시의 상공을 비행하는 철새 떼들은 인간탐욕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상승기류를 활용한다든지, 히말라야 산맥을 넘기 위해서는 거기에 걸맞는 상승기류가 찾아올 때까지 죽음까지 인내하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한다.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 낮은 곳을 찾아 산을 에둘러 가며 결국 백천해납(百川海納)의 바다에 이른다. 뒷물결이 바쁘다고 앞 물결을 추월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전혀 서두르지 않고 낮은 곳은 다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해서 우리네 삶의 진선미를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농부가 된다는 것

중부지방에 석 달째 계속되던 가뭄 끝에 6월 말에야 단비가 내렸다. 남쪽에서 장마 구름이 북상하면서 천둥과 번개도 함께하는 장대비였다. 가뭄으로 논이 갈라져 모내기도 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하늘만 쳐다보아야 했고, 산골짜기까지 말라붙은 산촌에는 식수를 배급해야 했다. 철쭉, 회양목 등 도회지의 조경용 천근성 관목들도 빨갛게 타 죽었다. 언론은 처음에는 이례적인 봄 가뭄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104년 만의 가뭄이라고 숫자나 희롱한다. 바닥난 저수지나 타들어 가는 밭작물의 사진이나 보도하면서 농민의 애타는 심정을 읽는 의무를 다했다는 투다. 농사를 망친 그들의 한 해 삶에 대한 대책은 관심도 없다. 전체인구의 7%에도 못 미친다는 소수 유권자로 전락했다고 그러는 걸까. 어느 관리의 생각인지 호들갑을 떨며 물주머니를 매달고 있는 도시의 가로수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도회지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경쟁 속에서도 자연의 삶을 그리는 수많은 도시농부들의 이중적인 욕망이라도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싶다. 잠시 후면 조금 불편하게 살면서라도 녹색의 원형질을 실천하고자 자연에 발 벗고 나설 그들일지 모른다.


폭우, 산사태

작년 이맘때는 100년 만의 폭우였다고 야단이 났다. 기후변화에 따른 결과라고는 하지만 5월부터 3개월 동안 계속 비가 내렸고 7월 말에는 집중호우가 내렸다. 일조량이 부족하여 과실들이 열매를 충실하게 맺지 못했을 뿐만 아니고 병충해에 시달렸다. 밭작물들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여서 야채값이 폭등하기도 했다. 가장 원시적인 자연재해라 했지만 수도 서울의 가장 번화가인 강남 서초동의 우면산에 산사태가 나 40여 명이 죽고 다쳤으며 가옥들을 덮쳤다.

내가 애써 가꾸던 포천 신북의 나남수목원에도 산사태를 당했다. 18만 평 산림의 한 골짜기에서 일어난 자연재해이기는 했지만 가슴이 무너지는 힘든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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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스러웠던 1백 년이 넘는 산뽕나무가 폭우에 묻혀버렸다.

 


지난해 따듯한 봄날, 임건석 전무가 출판사 사람들을 이끌고 자연체험 삼아 정성스레 심고 잡초를 뽑으며 길렀던 헛개나무, 음나무, 밤나무 묘목 3천 그루의 묘목밭이 떠내려갔다. 신령스럽기까지 했던 100년 넘는 산뽕나무가 토사에 묻혀 죽었다. 생장의 북방한계에 살아 있다던 50년 된 쪽동백나무도 같이 묻혀버렸다. 거목이 된 잣나무 숲에도 수십 그루가 뿌리째 뽑히고 용암 같은 토사가 깊게 할퀴고 간 자리에는 짐승의 이빨자국처럼 바위가 드러났다. 고즈넉한 숲속의 산책로는 말할 것도 없고 임도와 작업로까지 끊기고 개울은 두 배나 넓어졌다. 아담한 호수는 토사에 묻혀 그 자리만 얼추 짐작할 뿐이었다. 조그마한 둠벙을 10배나 확장하여 주변을 3단의 자연석으로 두르고 수초를 심고 분수까지 만들며 조경에 정성을 기울였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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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 년 만의 폭우로 산사태를 만났다. 자연재해를 이겨낸다기보다는 원형 비슷하게라도 복원해야 하는 운명은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장엄한 시간들이어야 했다.

 

 

다시 시작하는 장엄한 시간들

 

지난여름, 가을, 초겨울은 호수를 메운 토사를 퍼내고, 석축을 쌓아 길을 새로 뚫고, 조그만 산봉우리 하나를 통째로 털어내 그 흙을 메워가면서 나무를 다시 심는 등 수목원 복구작업에 온 정성을 다한 장엄한 시간들이었다. 그 삶의 시간들은 어쩌면 지금도 현재진행형인지 모른다.


우선은 다시는 산사태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1킬로미터 개울 상류에 댐을 만들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15미터 높이의 사방댐 공사는 그렇게 많은 재원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모를 처음 해보는 대역사였다. 강성환 조경사장에게는 처음 부닥치는 일이라서 압록강 댐이라도 건설하는 초조함이 있었으리라. 댐 윗부분의 3백 미터 계곡 물길은 그 본연의 길을 찾아 양쪽 벽과 바닥을 자연석으로 정비했다. 댐을 지탱하기 위해 댐 아랫부분은 석축을 높이 쌓아 물길을 남기고 계곡 전부를 흙으로 메꾸었다. 1천 평의 넓은 잔디밭과 함께 자연호수가 새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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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익는 산사태 방지용 호숫가의 나무들

 


댐 주변에는 큰마음 먹고 마침 가까운 마을의 개발공사로 매물로 나온 당산나무로 대접받았던 거목인 느티나무 8그루와 목련을 이식했다. 기후조건이 비슷해야 나무도 그 삶을 유지한다. 몇 년 동안 땀 흘려 가꿔 충남 태안농장에서 많은 인력과 장비를 투자해서 이식한 장송(長松) 30그루 중 절반을 죽이고 나서야 알아챈 값진 경험이었다. 그 바닷가의 바닷냄새까지는 이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주변을 정리하자, 발길이 힘들어 쳐다만 보았던 50년이 넘는 야생의 오동나무, 산뽕나무, 산벗나무들이 아담하게 품에 들어왔다. 우람한 느티나무의 그늘과 함께 숲을 품은 호수의 고즈넉한 원시의 정경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계곡 건너 쪽동백나무의 군락지에서 제일 튼실한 놈을 골라 토사에 묻혔던 제 애비를 대신하라고 이식했다. 어디서 자란들 어떠하랴만, 꼭 그 자리에 복원시켜보고 싶은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저 생명에 대한 내 아쉬움의 가냘픈 몸짓이리라.


흙을 높이 돋아 복구한 묘목밭 3천 평에는 가까운 미래의 푸르름을 생각하며 2년생 헛개나무, 음나무, 밤나무 묘목 3천 그루를 다시 심었다. 작년에 현장실습을 했던 출판사 사람들이 고승철 주필의 지휘로 같은 자리에 같은 묘목을 심으면서 자연과 삶과 시간의 어떤 의미를 되새겼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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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와 목백합, 대왕참나무가 어우러진 숲의 터널을 꿈꾼다.

 

 

목백합과 대왕참나무의 길


산사태로 숲 생태계의 이 빠진 곳을 보완하려는 안타까움으로 그 자리에 15년생 대왕참나무와 목백합나무 150그루를 구입해서 심는 출혈을 감당했다. 


몇 년 전 아들이 유학한 미국 코넬대학을 가던 중에 들른 보스턴의 MIT 대학 앞에 도열한 당당한 대왕참나무가 생각나서였다. 이 나무는 수형만 예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풍기는 향기가 일품으로, 관리동 앞의 계수나무 5그루와 함께 수목원의 숲향기를 더 짙게 할 것이다.


목백합나무는 입하(立夏)에 쌀밥 같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가 열 지어선 개천가를 따라 심어 함께 어우러지게 했다. 조금 지나면 반대쪽에 열 지어선 단풍나무와 숲 터널을 이룰 것이다. 이 나무는 속성수이면서도 백합 같은 꽃을 피워 목백합이라 불리고, 아까시나무보다 꿀이 많다고 한다. 30년 전 여행 중에 들른 미국 육사인 웨스트포인트 문 앞에 두 사람이 감싸 안을 만큼의 거목인 이 나무가 기억 속에 새로웠기 때문이다. 내가 스쳐 지나간 먼 훗날에도 나남 수목원의 상징이 될지도 모르는 이 나무의 존재감을 아련한 상상 속에 그려본다.

 

 

벌개미취의 꽃바다


호수 주변의 벌겋게 드러난 곳에는 광릉집에서 10년 동안 몇 포기를 번식시켜 군락을 이루게 했던 벌개미취를 몇 트럭 캐어와서 한 포기 한 포기 일삼아 심었다. 이삼 년이면 벌개미취가 수목원의 외딴곳을 그 꽃그늘로 뒤덮을 것이다. 장마가 끝나면 들국화처럼 예쁜 꽃밭이 되기도 하지만 워낙 생명력이 강해 돌밭 박토에서도 잘 자라며 경사지의 흙 무너짐도 방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월정사 앞의 자생식물원 김창렬 사장이 우정으로 추천한 고산지대의 고유종인 분홍바늘꽃을 이식할 때까지는 벌개미취로 그 흥취를 대신할 수밖에 없다.


새로 조성한 1킬로의 개천 석축 위에는 동그란 제방처럼 흙을 돋아 코스모스 씨를 뿌렸다. 40년 전 춘천에서 화천 넘어 가는 초가을 뙤약볕에 하늘거리는 키 큰 코스모스의 사열을 받았던 이등병의 아련한 추억도 재현해보고 싶었다. 반대편 길가에는 아편을 추출한다는 양귀비의 사촌인 개양귀비 씨앗을 뿌려 장관을 이루게 했다. 이 녀석은 2년생 화초여서 거의 매년 씨를 뿌려야 하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여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꽃 군락의 자태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100년 만의 폭우가 일상화될지도 모른다. 자연 그대로의 물길을 존중해야 했다. 인간의 눈높이로 자연을 재단할 수 있다는 오만부터 버려야 한다. 왜소한 인간이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하면서도 천재지변이라거나 자연의 재앙이라는 허위의식 뒤에 웅크리고 숨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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