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의 개척정신과 파주캠퍼스
작성일 : 10.10.27   조회수 : 1886

이화여대의 개척정신과 파주캠퍼스

 

 

파주 출판도시에 둥지를 튼 지 벌써 6년이 되었다. 하늘이 내린 한강 하류의 녹색공간 12만 평에 120여 출판사 동무들과 공동체 사회 같은 문향이 넘치는 아름다운 소도시의 꿈을 이루고 있다. 서초동 양재역 앞의 지훈빌딩 시절보다 출퇴근이나 시내출입이 어려운 교통사정만 빼고는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다. 석양 무렵 원고 속에 파묻혀 있다가 퇴근하는 길은 한강을 가슴에 가득 안으며 거슬러 올라가는 자유로 변의 풍광이 충일한 하루를 보냈다는 기분 좋은 허기를 느끼게 한다.


문화예술의 도시 파주에 이화여대 캠퍼스가

이제 파주는 삶의 터전이며 살아 있음의 사랑스러운 현장이 되었다.

빠듯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 늠름한 기상을 심어주고자 조지훈 선생의 선비정신과 문학세계를 구현하는 지훈상(芝薰賞)을 제정하여 운영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제3기 지훈상 운영위원장이신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의 이대 파주캠퍼스 조성 후원의 밤에 강연 요청을 받은 것은, 혼자 하기에는 너무 화사한 지난 봄날이었다. 처의 모교에서 20만에 가까운 이화대학 사위 중 대표성이 부족한 한 사람인데도, 파주에 터를 닦고 있는 문화예술의 첨병으로 사랑해 주시는 이 총장의 배려로 소중한 자리에 섰다.

이날은 여성 신교육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선각자들의 건학이념의 위대한 뜻을 21세기에 이어받아 파주 넓은 들에 이화캠퍼스를 조성하는 용틀임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이를 위한 열렬한 응원대장이어야 하며, 또는 이화여대 정신의 구현을 위한 환희의 나팔수여도 좋을 것 같은 모임이었다.

파주캠퍼스의 위치는 파주의 남쪽인 월롱산 자락이다. 봄나들이 삼아 대학 시절 가슴 태우던 미팅의 기억이라도 떠올리면서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면 월롱역까지 30분 거리의 바로 이웃이다. 지금의 통일로나 자유로 말고도 5년 후 제2외곽순환도로가 열리고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상암동에서 문산까지의 민자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승용차로도 신촌에서 강남역 가는 길보다 훨씬 가까울 것이다.


고려 개성과 조선 한양의 중간인 녹색 공간

세계문명의 발상지는 거의가 큰 강의 하류였다. 기름진 옥토와 바다로의 길이 열렸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의 제일 큰 강인 한강이 서해바다로 나가는 하류가 바로 이곳이다. 여기서 임진강과 만나 비옥한 교하평야를 이루는 이곳은 고려의 수도 개성과 조선의 수도 한양의 꼭 중간지점이다. 해서 통일한국의 수도 자리로 오래전부터 찜해 놓았는지도 모른다. 국토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았던 이곳이 60년이 지나자, 의도되지 않았던 결과였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자원을 갖춘 녹색공간이 되어 이 나라 엘리트가 학문을 절차탁마하는 연구시설의 캠퍼스로는 최적의 공간이 되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여성신교육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이화의 개척정신이 다시 승화하여 후손들에게 통일과 평화의 염원이 이곳에서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하늘이 내리신 길지에 이화의 파주캠퍼스가 거인의 모습으로 주춧돌을 놓는 것이다.

봉황이 내려앉기 위해서는 거대한 벽오동의 숲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화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반갑게 맞이할 파주에 계신 가까운 과거의 선비들을 찾아보자. 먼저, 율곡 이이 선생은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임진강변인 파주 파평면 율곡리에서 성장했고, 법원리에 묘가 있다. 율곡이 후학을 가르쳤던 자운서원과 화석정이 문화재로 지금도 건재하다. 화석정 주변에는 국난을 대비해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었던 율곡의 뜻을 새롭게 잇기 위해 파주시는 5년 전에 일본 소나무를 베어내고 밤나무 999주와 나도밤나무 1그루를 다시 심어 복원사업을 했다.

청백리로 유명했던 황희 정승도 이곳 사람이며 탄현면에 묘가 있다. 방촌서원을 열어 후학을 지도했고 문산읍 임진강 변에 반구정을 세워 갈매기와 한가롭게 벗을 하였다. 여진을 정벌한 고려시대의 명장 윤관 장군도 파평면 출생으로 광탄면에 홍살문을 앞세운 왕릉 규모의 묘가 있다. 이곳은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간에 소송에 휩싸여 정조임금도 해결하지 못하다가 최근에 해결되어 세간에 화제를 일으켰던 바로 그곳으로, 아무튼 명당자리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한 분을 더 들면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를 지냈고 《동의보감》을 저술했던 구암 허준 선생도 파주사람이다.


역사문화와 평화통일의 도시 파주에서 이화의 꿈을!

이러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평화와 통일의 도시 파주를 선택한 이화대학의 혜안은 범상을 넘어 아무도 꿈도 꾸어보지 못한 비범한 민족적 결단이었음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것은 이화대학의 정신이 어지신 어머니의 뜨거운 마음으로 분단된 산하를 감싸 안고, 통일 후의 세대까지 생각하고 대비하여 통일 후의 한국사회와 여성교육을 이끌어가려는 자랑스러운 국내 유일의 대학이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유난히 길었던 겨울 끝자락에 파주시 문화회관에서는 이화대학 파주캠퍼스 착공식을 위한 고천제를 겸하여 도지사, 파주시장, 시민들과 함께 어울려 이화음대의 고품격 선율을 감상하는 황홀한 겨울밤을 같이하기도 했다. 벌써 이화대학의 문화의 향기는 파주를 포근하게 감싸는 듯하다.

124년 전 이화대학 건학의 선구자들이 꿈꾸었던 곳이 여기 새로운 마을 신촌이었다면, 21세기 지금 또 하나의 이화 백 년, 천 년을 꿈꾸는 새로운 마을 신촌은 파주캠퍼스임이 틀림없다. 말 달리던 대륙으로의 웅비를 꿈꾸는 초석을 놓는 파주캠퍼스 조성 후원을 위한 우리들의 이 위대한 약속을 위해, 정성어린 후원자 여러분들의 손을 맞잡고, 이화대학이 잘 되어야 이 나라가 잘 된다는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이화의 정신을 구현하는 대열에 어깨동무하여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거인의 의로운 첫걸음에 영광이 함께하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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