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말한다] 천자문에 숨어 있는 동양의 권력과 문화
작성일 : 06.02.21   조회수 : 1721

이코노미스트 | 825호, 2006. 2. 21.

 

[이 책을 말한다] 천자문에 숨어 있는 동양의 권력과 문화 



《욕망하는 천자문》, 김근 지음

후기 정보화사회를 꿈꾸는 시테크의 첨단 정보시대에 ‘천자문’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다. 정보사회의 어두운 그늘은 사회의 분절과 파편화에 따른 인간의 소외며, 이를 견디는 방법으로는 집단 무의식에 의존할 수도 있다. 선진 경영기법으로 무장한 40대 이후의 CEO에게도 천자문은 상상 속의 고향이 아닐까 싶다. 문자는 정치의 시작이었다. 또 사물은 문자를 통해 존재했고 규정됐고 인간 질서에 편입됐다. 문자는 지시의 역사적 맥락에서보다는 한자의 서체나 그 모양이 풍기는 신비로운 이미지의 감각으로 뇌리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최근 갑자기 사자성어가 유행한다. 끼리끼리의 비밀스러운 의사 소통행위가 동양적인 사자성어의 형태로 세대와 세대의 차이를 넘는 공론장으로 드러났는지도 모른다. 그저 한자를 조합한 억지 사자성어도 있지만, 현실을 풍자하며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던 주역의 규괘(睽卦), 상화하택(上火下澤)이 일류대 논술시험으로 출제되기도 했다.

이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교생도 동양 고전을 읽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고교생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제일 어려운 난관이 한자 쓰기 문제인 모양이다. 예컨대 그들의 소망인 ‘합격'(合格)이라는 한자를 쓰지 못해 절반이 탈락하기도 한다.

《욕망하는 천자문 ― 문자 속에 숨은 권력, 천자문 다시 읽기》(2003)는 추억 속의 낡은 천자문이 728쪽이나 되는 두꺼운 양장본 사회과학책으로 위용을 드러낸다. 천자문의 욕망을 대중이 욕망하는지도 모른다. 주위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는데 그 칭송은 무엇인가의 욕망에 맞춰 살아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다시 만들어지는 하늘, 땅, 인간의 진실’, ‘오상(五常)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도리인가’,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지식인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소외, 이를 견디는 지혜’ 등 9부로 나뉘어 문화의 원형을 해부한다. 고전이란 텍스트만 존재하기에 콘텍스트에 따라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예를 들면 권상출척(勸賞黜陟)은 상벌의 네 가지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대립적 방식을 두 측면에서 기술한 것으로 본다. 즉 권상(勸賞)이란 실적이 좋은 이에게는 상(賞) 자의 자형이 말하듯이 재물[貝]로 보상해 주고,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권(勸) 자의 자형이 말하듯이 힘[力]을 더해주어 다음에는 성취하게 해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출척(黜陟) 역시 잘 해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출(黜)자의 자형이 말하는 대로 그의 방식이 진부해서[黑] 더 이상 쓰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잘한 사람에게는 척(陟)자의 자형이 말하는 대로 높이 들어주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를 보고 배우게 함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보면 백범이 인천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다른 죄수들에게 《천자문》, 《소학》을 교육하는 감방학교의 모습이 있다. 이때의 천자문은 민중의 계몽과 구국의 길이기도 했다. 정경의숙을 열어 국가를 책임질 엘리트 교육을 하는 일본 마쓰시타 그룹에서는 지금도 신입사원들에게 《논어》를 필수과목으로 읽히고 있다고 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자본주의보다 유교사회의 자본주의를 더 가치 있는 덕목으로 평가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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