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나물 양념 낙지비빔밥 珍味
작성일 : 91.10.24   조회수 : 1478

중앙일보 | 1991. 10. 24.

 

톳나물 양념 낙지비빔밥 珍味

 

 

〈나의 단골집〉 ‘영산강’

마음 조급한 탐욕의 사냥꾼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기주의의 아집만이 휩쓸고 있는 아스팔트의 불모지대에서, 마음 편하게 바닷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음식점이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유쾌한 일임이 틀림없다.

5년 전 출판사를 서초동으로 옮기고 나서 곧바로 소설가 김원일 씨가 최일남 선생하고 여러 번 와 본 아끼는 단골이라면서 소개해 준 곳이 순 전라도 토속음식점 ‘영산강’이다. 예술의 전당(남부터미널) 지하철역에서 나와 파출소 옆 강남부속상가에 있는데, 출판사에서 가깝기도 하고 식도락에 일가견을 가진 미식가로 자처하는 〈사회비평〉 편집위원들이 이 집만은 A 학점을 주고 있는 탓에 점심때나 편집회의 때마다 이곳을 많이 찾게 된다.

목포가 고향이라는 주인 김 씨(41) 부부는 15년이 넘게 서울생활을 했으면서도 밤차로 올라오는 싱싱한 해물을 받으러 용산역에 가는 길 이외에는 아직 서울거리를 제대로 모른다는 뱃사람 그대로의 소박함을 지니고 있다. 전라도 음식을 서울에 선보인 ‘삼학도’의 주방장으로 일하다가 고향음식이 너무 도시화되는 것이 싫어 고향 맛 그대로를 자랑하고 싶어 ‘영산강’을 개업했다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이곳에 오기만 하면 나오는 반찬마다 그의 이런 우직스런 고집이 알알이 배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점심으로는 낙지비빔밥(3천 원)이 제일이다. 된장에 버무린 남쪽 청정해 톳나물 양념 낙지비빔밥 珍味 안에서만 나는 뜸부기(톳) 나물과 무공해 민물새우로 만든 맵지도 짜지도 않은 토하젓을 함께 비벼야 한다. 저녁 겸 술자리라면 우선은 이 집의 특허 상품이기도 한 ‘소낙막기’(1인분 5천 원)를 주문할 일이다. 쇠고기와 낙지를 잘게 다져 달걀에 반숙해 만든 오믈렛인데 백주(보해) 한 잔을 곁들여 들면 시장기도 달랠 겸 맛이 그만이다.

전라도에서 혼인 등 대사를 치를 때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홍어다. 그것도 흑산도 홍어를 최고로 친다. 이 집엔 홍어찜과 홍어무침(3인분 한 접시 1만 5천 원)이 상큼한 미나리 양념과 함께 준비돼 있는데 싱싱한 것, 중간 정도의 것, 푹 삭은 것 등 손님이 입맛대로 주문해 먹을 수 있다. 이 집에 준비돼 있는 목포 세발낙지(안주 9천 원)는 야성을 부려가며 통째로 먹어도 좋고, 양념과 깨를 뿌려 구워서 먹어도 좋고, 마늘로 양념한 뜨거운 낙지탕(1인분 4천 원)으로 들어도 좋다.

이때쯤이면 투박한 미소를 띤 여주인이 해묵은 된장에 햇보리대궁을 넣고 홍어 내장인 홍어애와 애기쑥을 넣어 잘 끓인 국물을 서비스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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